서릿발 같이 강건하던 '분노하라'의 여운을 여전히 남긴채 94세의 노투사 '스테판 에셀'님의 제안이 담긴 새로운 책을 만났다.

 

레지스탕스 정신이 흐트러졌다며 프랑스의 각성을 요구하면서 호통을 치는 것으로 정신을 일깨우더니 이번에는 현대를 진단하는 것에서 시작해 나아갈 방향을 넌지시 일러준다.

과연 관록있는 투사답게 호통만이 아니라 격려도 잊지 않는다.

 

한 번 읽는 것으로 음미함이 모자란 것 같아 두 번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일 것 같다.

물론 이 관점은 우리나라 독자들에 해당하는 관점이 될터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정신'을 추구하고 그 정신을 잊지 말고 왜곡하지 말며, 그 고유한 정신을 흐트러짐 없이 계승해 나갈 것을 당부하는 직설적 표현이 많다보니 '프랑스 국민'이 아닌 우리들로서는 나름의 해석을 통한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유에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감상은 보편성을 다룬 이야기에 대한 감상일 뿐인 것이 된다.

 

하지만 프랑스를 모른다고 해서 이 책이 어렵거나 난해해서 곤란한 것으로 다가들지는 않는다.

그만큼 우리가 마주한 세계적 규모의 대처가 필요한 '위기'를 잘 짚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책 속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계화는 인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자 최악의 것"이라고 말이다.

세계화가 인류에게 최상의 것인 이유는 인류를 지탱하는 모든 영역이 상호 의존적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인류에게 최악의 것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란 것은 무슨 아이러니일까?

최악인 이유는 연쇄 재앙으로 향하는 광걱인 질주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결국 세계인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스테판 에셀 옹께서 나이를 잊은듯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각성을 촉구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터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라는 커다란 암말의 나태함을 깨우는 등애를 칭했듯' 너무 거대하기에 나태해지고 부패하기 쉬운 세계에 끊임없는 경고와 함께 조언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최상의 효과와 최악의 결과 사이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세계화와 탈세계화를 동시에 추구'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를 진행하되 부분적으로 탈세계화를 고수하라는 이야기다.

 

사실 말이 쉽지 세계의 압력이 엄연한 현실적 압박으로 작용하는 세계에서 홀로 세계화의 흐름을 역행하기란 쉽지 않다.

세계화를 진행하면서 탈세계화를 공존시킨다는 모순된 명제에서 시작하기에 이 의견은 많은 한계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도 내내 좋은 이야기이고, 그렇게 된다면 참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실현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이 책에서는 정치를 사랑하기 위한 13가지 제안을 싣고 있는데, 그 제안들이 참 이상적이다.

그리고 우리도 알듯 이상은 실현되기까지 많은 장애와 마주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타협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는 쇄신을 당부한다.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신랄하게 꼬집고 학문의 통섭이라는 시대적 조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세계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염려하는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굳이 판단해보자면 13가지 제안들은 공저자인 '에드가 모랭'이 '스테판 에셀'옹의 일갈을 구체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이어지면서 살아있고 깨어있는 정신이 계승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국은 혼란을 향해 그야말로 치닫는 듯 하다.

총선은 끝나지 않고 대선은 이미 시작되었다.

스테판 에셀 옹의 일갈이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그리고 정치하는 저들에게 깊이 울려퍼지길 기대해본다.

 

[이 감상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