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2007. 1. 21
오규원

1

오규원님이 돌아가셨다.

 

학교라는 울타리, 과제라는 끈적한 갯벌 속에서 이지만

난 오규원님을 만나서 기쁘다.

 

2

'오규원' 이라는 작가의 글과 시에 대한 꾸준함이

그가 만들어낸 어떤 작품보다 깊게 남을 것이다

 

분절된 빙그레 우유 속에서 그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의미

단절된 의미 속에서 퀼트된 이미지로 세계를 구성해나가는

이른바, 현대인의 의미들을

별자리를 만들어가듯 하나하나씩 선을 긋고 신화를 만들어 간다.

 

3

 

‘두두’는 생전 시인이 ‘날이미지 시’론을 통해 밝힌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다)’라는 선가(禪家)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 예술가가 평생을 얻어 찾아내려고 했던 것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답을 찾아낸 것일까 혹은 잃은 것일까

다만 그의 시는 매우 간결해 졌으며, 표면적으로 쉬워졌다.

 

쉬워졌다는 것은 단어와 단어사이의 거리가 좁아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 사이의 의미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짧은 행과 행사이,

그가 찾아내어보려했던 진리들이 탑을 이루고 있다.

내가 나의 일상에 집착하지 않고, 거울에 비치는 현상에 현혹되지 않는 어느날

그 행간 사이의 진리들을 캐어낼 수 있으리라.

아직 설익은 나는 아직은 머리로 밖에 이해할 수 없으리라.

 

4

 

더 잃을 것이 없이, 불타게 살아오셨던 님

나무 속에서 평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