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하

 

국문학도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만, 문제적 작가 김영하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그의 단편 몇 개가 날 놀라게 했고 그가 문제적 작가라는 것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판단을 너무나 쉽게 했음을 이번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김영하는 단순히 센세이셔널한 작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에 번역된 작품이 인기가 있고, 영화화된 몇몇의 작품에 상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내걷는 걸음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상상력과 파괴력을 좀 더 가까이 지켜 보고 싶다.

 

 

#2. 아랑, 이라는 전설

 

전설의 고향에서도 몇번을 울궈먹었던 작품,

머리를 풀어헤치고 섬짓하게 등장하는 여자 귀신과 그것을 해결하는 번듯하게 생긴 사또

우리에게 익숙한 아랑이라는 전설 혹은 이야기가 김영하를 통해서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는 과감히 이야기꾼을 자처한다.

모두가 그가 이야기꿈임을 아는 데에도 더 앞서서 이야기 선생으로 나서고 있다.

전설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들과 (물론 거짓된) 역사적인 조각들을 손에 쥐어주며

같이 상상해보자고 이쪽으로 손을 내어민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또한 과감하다.

작가과 독자 모두 이야기꾼으로 만들어가면서 아랑 전설을 귀신이야기가 아닌 추리극으로 둔갑을 시킨다.

시대와 인간, 그 사이의 욕망들을 낱개로 파헤치면서 면면들이, 갈 수 있는 길을 가면서 그렇지 않은 샛길들을 찾아낸다.

 

아랑에 관련된 이야기 뿐 아니라,

아랑이라는 전설과 현재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꼴라주 해가면서

현재 배경의 소설 속의 박이라는 인간과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 우리가 김영하라고 생각했던- 화자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흘려버린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이어지기는 쉽다.

하지만 그 스스로 어떤 문턱을 넘나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의 다양한 시선과, 많은 지식 그리고 배짱이 있어야 한다.

방안의 환상, 혹은 현대 작가들의 퇴폐한 일상과 미래의 답답함을 그려낼 줄로만 알고 있던

나의 무지와, 김영하 작가님께, 고개 숙여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