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책이었다.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어둠에 쉽게 읽고자 마음먹지 못하고 있었다. 숨겨져 있던 나의 어둠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날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고 할까? 아마 다행이겠지만 나의 감수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공감과 비공감의 중간에서 이쪽 저쪽으로 발을 넣었다 빼기 바빴다.

인간의 나약함을 모두 모아다가 하나의 인간으로 빚어내면 이와 같을까?

인간실격의 요조는 내게 그렇게 느껴졌다. 사람이 공포를 마주했을 때의 행동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이 있을 것이고, 요조는 그 허세의 달인이었다. 그런 요조의 불행의 씨앗은 사람이 너무나 무서웠다는 것에 있다. 아니 사람의 무서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렸을때는 귀신, 유령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나 호랑이나 사자같은 짐승을 무서워하기 마련이지만, 나이가 먹고 어른이 되면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사람이다. 사람만큼 무서운 것이 없으면서도 사람만큼 위안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을 믿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믿지 말아야할지 우린 모른다. 그런 무지 속에서 상처받거나 치료받으며 조심스레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요조는 그 상처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서 자기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런 요조가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 신경정신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정신병원이라는 곳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친사람들만이 가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미쳤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듯하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 속한 사람들이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행위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요조가 자신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칭한 것도 틀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간은 낙오자, 인간실격임에 다름없다고 다자이 오사무는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인간실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중편인 인간실격과 단편인 물고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 개 이야기, 화폐 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구분해보자면 인간실격, 개 이야기는 인간의 나약함을, 물고기비늘 옷, 로마네스크, 새잎 돋은 벚나무와 마술 휘파람은 기묘한 이야기에 뒤따르는 상상력을, 화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나약함을 가진 한 인간으로 난 아직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람을 (완벽히는 아닐지라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실격을 말하는 요조와 내가 다른 점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당신은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