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처음 서울은 복잡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하루에 버스가 5~6번 들어오고 그나마 눈이 많은 날에는 오지 않는 조용한 시골에서 산 열 살 소녀에게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다 스무 살쯤 먹어서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광화문 소인이 찍혀 편지가 전해지던 그 무렵. 서울, 아니 광화문은 늘 목마른 그리움이었다. 이제야 조금씩 서울은 나에게 만만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땅 속으로 다니는 지하철 환승역도 이젠 고속을 찾아 탈만큼은 되었으니 영 맹추는 아닌 게다. 이젠 조금씩 그 속살이 궁금해진다. 북촌여행도 하고 싶고 여의도 살구꽃밭 아래에 앉아도 있고 싶고 계절마다 변하는 궁궐로 무시로 다니고 싶다.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늘 시간에 쫓겨 광화문 초입에서 발을 돌려야했던 나에게 한 번도 발들이지 못했던 궁궐을 아주 자세하게 안내해준 책이다. 노란 나비를 따라 여기저기 노닐다 온 기분이랄까? 이 책에 그려진 연한 파스텔톤 그림들이 나의 궁궐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라 건물배치도에 따라 경복궁 구석구석을 사드락사드락 걸으며 건물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내력을 자분자분 소개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글과 그림을 담은 이향우 선생은 미술을 전공하고 지금은 우리궁궐지킴이로 활동 중이시다. 섬세하게 그려진 첫 장의 궁궐도는 궁궐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무지한 나에게 아주 유용한 그림이었다.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홍례문, 영제교에서 만난 상상의 동물들과 영제교가 갖는 의미인 왕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 짓는 상징성. 태평성대를 꿈꾼 근정전. 유흥준 선생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경복궁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비오는 날의 근정전 뜰의 박석. 이곳에서 왕은 태평성대를 꿈꾸며 집무를 했을 것이다. 사정문을 지나 도착한 사정전. 왕의 집무실이기도 한 이곳에서 왕은 백성을 생각하고 수정전에서 집현전 학자등과 학문을 논했을 것이다. 왕이 개인 생활공간인 강녕전과 왕실 연회장인 경회루, 왕비가 머물던 교태전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뒤로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 십장생 굴뚝 등등. 계절마다 다른 느낌의 궁궐을 마음으로 노닐다 나온 기분. 이 책을 읽으면 부끄러웠던 것은 내가 아직도 궁궐을 직접 가보지 못했다는 거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이런 말을 한다.

 

그 옛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그들의 생활 속으로 함께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유는 내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생겼을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 꼭꼭 숨어버린 그들을 불러내려면 우리가 먼저 그들 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p14

 

한적한 어느 한 날. 합화당 뒤편 하지 위로 화살나무 단풍이 곱게 내려앉는 날. 조용히 거닐고 싶다. 자미당 꽃담에 꽃을 담은 자의 마음을 보듬고. 그날 용케도 비가와 근정전 앞 뜰 어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박석 위로 내리는 빗방울을 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