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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물음은 철학사 책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던져진 물음을 더욱 치밀하게 체계적으로, 또한 근본적으로 묻기 위해 철학사를 조회할 뿐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겪는 문제, 더 좋기로는 나 자신이 겪는 문제에서 출발하여 철학사를 조회할 뿐이다. 진정 철학적인 주제 또는 문제의식을 찾으려면 ‘철학’ 바깥의 텍스트와 삶을 진지하게 살펴야 할 터이다.] p335

꼭 책이 아니어도 삶에 지혜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책을 많이 읽지도 즐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너그럽고 긍정적이며 막다른 곳에선 지혜가 돋보인다. 어쩜 그리 명답을 내놓냐는 나의 감탄에 그는 말한다. 수업료 비싼 ‘경험’이라는 대가가 있었다고. 철학은 고대의 것이 아니었다. 도서관의 먼지 가득 쌓인 서가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삶의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철학의 물음은 현실에 있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은 자칫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철학이라는 이름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궁극적으로 염려하고 부딪히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목소리에 과거에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았고 가르쳤던 현인이 있었다고 말해준다. 글의 형식도 다양해서 철학자의 관점에 따라 독백형식이 되기도 하고 편지형식이 되기도 하고 대화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책 속엔 상당히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나온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자기 삶의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들 중엔 서로 맞서는 사람들도 있고 비슷한 사상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 가치에 따라 취사선택은 자유이다.

나는 그 중에 디오게네스의 일화에 솔깃한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으니 말해보라.”

“아! 제발 몸을 좀 비키셔서 폐하의 그림자를 치워 주시겠습니까? 해와 저 사이를 가리고 있는 폐하의 그림자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대왕은 크게 웃으면 말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구나.”

그냥 넘어갈 디오게네스가 아니었다.

“제가 디오게네스가 아니라면, 폐하만 아닌 그 어떤 사람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화폐위조 혐의로 추방당할 때도 그는 자신을 추방하는 도시통치자에게 대답한다.

“내가 받아야 할 처벌이 그것이라면 나 역시 당신에게 처벌을 내리겠습니다. 당신은 이곳 시노페에 남아 있는 벌을 받으시오!”

가진 것은 없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 ‘알렉산드로스’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자. 멋지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에 대한 다음의 말들이 바로 고대의 디오게네스 생각을 이은 것은 아닌지.

“무소유라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과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아무것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과 행하는 것에 구속되고 얽매여 있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p329

자신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삶. 그것이 진정한 무소유의 기쁨이라는 것.

35년간 정신과 의사로 재직하며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치료해온 이홍식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왜 우리 사회에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가? 행복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는 주관적인 개념인데,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타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사회적 차원으로 봐야 한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타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것’이라는 점을 볼 때 디오게네스의 실화는 아주 유효하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신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삶. 그런 위로가 이 책에 있다.

에피쿠로스가 전하는 이 말을 또 어떠한가!

“부디 삶을 즐기게나. 깊고 긴 잠 가운데 찾아온 잠깐의 깨어 있는 시간을 왜 괴롭고 슬프게 보낸단 말인가? 우주는 원자들이 춤을 추는 무도회장과 같다네. 별들은 하늘에서 춤추는 불꽃들이며, 우리의 삶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무도회에서 막간으로 공연되는 짦은 꿈이지.” p94

내가 지금도 무언가에 짓눌려 있고 갈 길 몰라 헤맨다면 이 책에서 한 명 골라보자.

내 삶에 지표가 되어줄 그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