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 년 전의 불확실하고 고득한 행성, 지구.

약 400~500만 년 전의 지구에 두 발로 걷는 원시인의 등장.

4~5만 년 전의 현생 인류의 등장.

이렇게 오래된(?) 숫자는 우리가 쥘 수 없는 돈의 개념 몇 조 보다도 더 까마득하여 개념적으로는 상상이 안가는 수이다. 길어야 백 년 사는 인간이 짧은 생은 늙은 지구에 지금도 주인처럼 영생을 꿈꾸고 있으니.

 

며칠 전 읽은 독일의 언론가인 볼프 슈나이더의 ‘인간이력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에서 초기 인류가 사용한 도구인 돌도끼를 가지고 프랑스에서 실제로 도구로서의 가치를 실험한 결과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부수고, 나무를 다듬는 등 여러 가지 쓰임새로 손색이 없었다는 보고였다. 박물관 유리관 안에 있던 오래된 돌덩이가 인간 최초의 도구였음을 깨닫기엔 까마득한 숫자로 표기된 지구의 시작과 별반 다르지 않았었는데 감각의 변화를 준 책이 며칠 전 읽은 그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난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외웠던 구석기시대 대표 유적지인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지에서 이 돌도끼가 출토되었다는 거다. 나는 수없이 시험을 보기 위해 이 부분을 외웠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감동하지 않았었다. 놀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우 놀랍다. 특히, 여기서 발견된 돌도끼가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니 실로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돌도끼를 아슐리안 주먹도끼라고 하는데 이는 프랑스의 생 야슐이라는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주먹도끼는 가장 원시적인 전기 구석기 시대 유물로 한국의 연곡리에서 발견되기 전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유물의 흔적으로 “ 서양 학자들은 인도를 경계로 그 서쪽, 즉 유럽은 중국이나 동아시아 지역은 덜 발달된 형태의 도구인 찍개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이 동아시아 지역보다 문화가 앞섰다고 주장했으나 연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로 인해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고 한다. p20

 

주먹도끼에 흥분해서 말이 넘 길어졌지만 주먹도끼를 다시 만난 듯하여 넘 반가운 나머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 아빠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 주듯이 전개된다. 부제가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보물’인데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 흐름에 맞게 주요한 유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우리나라 유적이 나온 시기인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이어 선사시대의 유물, 유적이 소개되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적과 유물로 역사를 읽는다. 고구려의 무용총,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쌍영총, 강서큰무덤. 백제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돌무지무덤과 토성, 무령왕릉, 금동대향로, 미륵사지석탑. 신라의 금관, 과학적으로 만든 첨성대. 통일신라시대의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얼굴무늬수박새, 토우, 문무대왕릉, 포석정 등이 소개되어 있다.

 

역사의 깊이를 알자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역사 유물을 만나러 갈 기회가 있다면 함께 읽고 가볍게 출발하기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