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아니 내가 아는 세상이라는 곳에서 최고는 아빠였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힘도 세고, 가장 강하리라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동네에서 또래와 함께 있을 때면, 그들 사이에서 나의 위치는 우리 형이 얼마나 힘이 세고, 내가 아는 형이 얼마나 힘이 센가에 달려있었다. 한없이 유치하기만 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릴 시절이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지금에도-나 뿐만 아닌 모두가-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나 힘이 센가를 대놓고 말하지 않고 다닐 뿐이지 다를 바 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력을 찾아서, 왕을 찾아서 말이다…….

 

마사오가 불패의 신화를 가지게 된 것은
사람들이 불패의 신화를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P33

 

  ‘마사오’라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라 불리는… 한 지역에서 모든 이들이 올려다보는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닌 거의 신에 가까운 사람-그럼에도 결국에는 그도 사람이다.-이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권력으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길거리의 왕이지만, 그럼에도 영웅일 수밖에 없는 사람. 더 이상 그에 대한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론 그만큼의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영웅이자, 신이며, 왕인 사람. 나, ‘장원두’가 그런 존재였던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고향을 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은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마사오의 모습을 추억과 현실의 교차를 통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전해져오는 교묘한 대조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와 마사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의 고향, 이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사오는 죽었다. 그를 통해서, 단순하게도 모든 삶이 등산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힘들게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고, 반드시 다시 내려만 와야 하는 등산과도 같은 삶. 『왕을 찾아서』에서는, 올라갔다면 반드시 내려오게 되어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왕-혹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지난 시절의 추억과 꽁꽁 묶는다. 그렇게 꽁꽁 묶은 추억들이 다시 오늘날의 권력으로 다시 나타난다. 끊임없는 순환 고리. 그것이 권력이든, -뜬금없을 진 모르겠으나…- 사랑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끝없는 노력을 통해 얻게 되는 화려함과 어느 한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손만 바라봐야하는 초라함이라는 순환의 고리 말이다. 휴… 그토록 영웅으로 왕으로 추앙받던 마사오의 마지막은 과연 어떤 했던가!

『왕을 찾아서』라는 책의 제목에, 나는 ‘왜 왕을 찾아야만 하는가?!’를 궁금해 한다. 나름의 생각으로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본다. 우선 왕을 ‘권력’이라는 것과 동의어로 보는 관점이라면, 누군가를 자신보다 높은 곳에 두고, 그 누군가를 섬겨야만 하는 삶을 원하는 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왕이 과연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단순하게 나를 보호해 줄 것만 같은 그런 권력을 가진 이를 원하는 것인가?! 그래서 설사 누군가 진정으로 그런 왕을 찾는 것이라면,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인간의- 나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경우라면, 왕을 찾는 다기 보다는 오히려 왕이 되기를 원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왕이라는 권력을 원하는 것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힘만을 목적으로 왕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왕이라는 존재를 ‘희망’과도 같은 의미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야할 길을 밝혀 줄, 그리고 내 미래가 되어줄 왕. 그렇다면 이쯤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왕을 찾았는가를 물어보기 전에, 당신은 당신이 아닌 왕이 필요한가, 를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왕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권력을 경계하고, 그 후에 따라오는 초라함이 두렵기에 그러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진정으로 왕이란 것이 필요한가, 라는 인간의 속성 그 자체와 마주하고 싶은 반항심 같은 것 때문이랄까?! 아니면, 인간의 나약함을 외면하고 싶어서?! 음… 원두와 같은 추억과 결합된 권력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혼란스러움은 그대로 살짝 놔두고, 이런 혼란을 안겨줌에도 이 이야기가 맛있다는 사실을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흔히들 음식 하나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향기로 한 번, 눈으로 또 한 번, 맛보면서 또 한 번, 그리고 씹는 소리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다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권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뭐가 있을까?! 책이니까 당연히 눈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가끔씩 그만의 어떤 향기가 나는 책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합쳐진 정말 맛있는 한 권의 책을 만날 수도 있다. 어떤 책이냐에 따라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왕을 찾아서』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는 읽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슨 어린 아이들 책 읽는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까지 내면서 읽냐? 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잘 모르는 말씀. 그냥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한 번 입으로 소리 내면서 읽어본다면 충분히 이런 나의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맛이 느껴지는 책을 지금까지는 만나보지 못했다. 김춘수 시인은 일찍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직접 입으로 소리 내어 읽기 전까지는 그냥 단어에 불과하던 것들이, 나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쉰다는 느낌, 그래서 더 생생하게 만져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 생생함이 등장인물들에게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으로 옮겨진다. 다시, 나의 왕을 찾아야 하는-혹은 그래야만 하는지 의문스러운- 삶으로 말이다…

 이제, 뭔가를 아삭아삭 씹으면서, 단어 하나하나 소리 내며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층 가까이 다가와 있는 영웅 마사오를 만나보고, 그 생생함으로 피부에 와 닿는 -그것이 혼란이든, 아니든-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왕을찾아서, 성석제,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