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고 할 수 없는 <백야행> 3권을 모두 읽었다.
읽는 내내 재미있기도 했고 작가의 치밀함에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고
엄청난 불편함과 화를 눌러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내 기분은 정말 ’찝찝하다’.

사건의 배경은 내가 1권부터 예상했던 대로였다.
너무나 많은 암시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니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짐작했을 거라 믿는다.
물론 범행동기에 대해선 뒤늦게야 알아챘지만 어쨌든 예상하고 있던
범위 내에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추리소설로써 보자면 이 작품은 뛰어나다.
꽤 많은 등장인물들과 이리저리 얽힌 관계와 연관성이 있는 사건들로만 보자면
작가는 정말 굉장한 추리소설작가라고 할 만 하다.
거기다 재미까지 더했으니 대중적인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가는 참으로 독자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속에 불편함을 가득 던질 수 있을까?
아니, 불편함을 넘어서 엄청나게 분노해야만 했다.
물론 그 분노는 오직 ’유키호’에게만 향해 있다.

책의 표지에는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분명 ’사랑’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유키호와 료지의 관계를,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오고갔던 마음이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두 사람이 나누었던 감정은 사랑도 뭣도 아니다.
어쩌면 료지만큼은 진정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꼭 사랑이 아니어야 한다.
만약 그것도 사랑이라고 치부한다면 세상 어느 누가 그 무서운 감정을
가질 수 있을지...

난 두 사람을 그저 광기 가득한 인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광기...그것말고는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다.
막말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막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혹시 두 사람의 감정이, 혹은 료지만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상대를 이상한 눈길로 밖에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난 두 남녀의 행동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지고 화가 난다.
특히 유키호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신비스런 여성이 절대 아니다.
그녀는 추하고 천박하며 악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료지를 사랑하고, 료지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건 말도 안 돼는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라는 이름에 죄를 짓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