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국사시간에나마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으로 그 이름을 들었던 철종. 태조, 태종, 세종, 성종, 숙종, 영조, 정조 및 연산군, 광해군 등 극화되고 소설화된 것이 많아 그 이름과 이야기가 익숙한 다른 임금들에 비해 뭐라 딱히 말하기 어려운 임금이 아닐까 싶다. 방송작가 출신이라는 김시연의 소설 <이몽>은 바로 이 강화도령 철종이 주인공인 역사 소설이다.

 우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철종 임금의 이야기를 소설화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과 문장으로 엮어낸 글이 너무 아름답다. 생소하여 언뜻 머리에 와 닿지 않고 행간을 읽어 지레짐작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옛스러움과 아름다움이 경외롭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여 왕권이 무색하던 시절. 후사없이 승하한 헌종의 뒤를 잇기 위해 억울하게 옥사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어 있던 어린 원범을 데려다 철종 임금으로 옹립한다. 왕이 되지 못한 왕손들은 억울하게 모반혐의를 받고 한낱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갔기에 왕손의 존재가 귀했고, 덕분에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은언군의 손자인 원범에게 손이 미친 것이다. 왕위에 올랐지만 당대의 세도가 안동 김씨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철종. 5년여 유배생활동안 사랑을 나눴던 봉이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입궁시키고자 하는데...

 구성자체가 무척 극적이다.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장면장면들이 곧 대본으로, 곧 영상으로 그대로 그려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았던 죄인신분의 왕손이 하루아침에 불려가 왕으로 앉혀진다... 어차피 꼭두각시에 불과한 왕, 그저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내고 사랑을 나누었던, 혼례를 치르기로 약조했던 여인을 못내 그리워하다... 온갖 반대와 고초에도 결국 그녀를 입궁시켜 후궁으로 들이려 하지만 그녀의 신분은 사실...

 정말 극적인 설정, 극적인 전개다. 덕분에, 이 소설이 극화되었을 때 원범 역에는 누가 어울릴지, 봉이 역에는 누가 어울릴지, 안동 김씨 대왕대비 순원왕후 역에는 누가 딱일 것 같다, 풍양 조씨 조대비 역에는 이 배우가 제격일 것 같다, 상상하며 읽었다. 가상의 인물들과 그들의 인연, 기구한 사연들도 절절하게 잘 엮어놓아 읽는 재미를 더했다.

 6년여 집필기간동안 자료조사와 고증에 힘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봉영식과 즉위식, 중전을 맞아들이는 절차, 왕의 행차, 대행대왕(죽은 선대왕)의 장례절차, 왕의 생활모습과 궐내의 풍습, 당시의 시대상 등 여러가지 부분들을 역사서 읽듯 소상히 알 수 있었다는 점도 이 소설의 미덕이라 하겠다.

 봉이의 신분이 밝혀지는, 아니 그 이전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렇기에 비극으로 끝날 사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그리고 졸지창간에 왕이 되어 모든 것이 힘겹기만 한 철종의 최후 역시 안타깝게 끝날 것이 예견되어진다. 역사에 쓰여진 철종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기 이를데 없지만 앞뒤 사연을 붙이고 이야기를 만들고 보니 애처롭기 그지 없다. 기나긴 조선역사에 짧막한 자리를 차지했고, 그마저도 미미한 기억에 그친 인간 철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 작가의 노력과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읽는 재미도, 앎의 재미도 훌륭한 이런 역사 소설은 언제든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