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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입니다. 친구 D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간단한 소식과 사진을 함께 보내왔습니다.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행복하고 건강해 보입니다.

그 친구와 저는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이 맞았습니다. 산을 좋아하여 등산도 하고, 여행도 가고, 젊은이들을 모아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신학이나 삶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기만 해도 신명이 나고 든든하고 삶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우리는 차츰 멀어졌습니다. 글로 밝히기조차 부끄러운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나빠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예전 같은 존경이나 신뢰, 따뜻함은 사라졌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제 안에는 분노와 냉소, 외로움과 죄책감이 번갈아 들락거렸습니다.

그 사이에 화해하려는 시도도 하였습니다. 미사를 함께 봉헌하기도 하고, 또 기도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닫혀 버린 마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도를 한 뒤로 마음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처를 지닌 채 우리는 헤어졌고, 결국 몇 년 동안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수련 수사 시절에 수련장 신부님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상처를 상처로 남기지 마라.”고 하신 말씀을 늘 명심하겠노라고 마음먹었는데, 저나 그 친구나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안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잊혀진 과거의 사람들처럼 지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바쁘고, 친구는 또 친구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모임에서 사람들이 그 친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척 힘들고 고생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번에 ‘흥, 자업자득이다. 그건 자기가 욕심을 부린 탓이요, 신앙인답지 못하게 산 까닭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고 혼자 판단해 버렸습니다. 보상 심리였을까요. 조금은 고소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다가온 자신의 모습,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한 모습. 아! 무척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자 눈이 열리고 자신의 발가벗은 모습을 알게 된, 그리고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고 물으셨을 때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는 제 안의 아담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가리고 정당화하려고 늘어놓았던 모든 말들, 그리고 친구의 불행을 원했던 악의에 찬 모든 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것은 제 얼굴에, 감히 하느님의 사랑을 설교하던 제 입에, 감히 하느님의 사랑을 쓰던 제 손과 온몸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마태 23:25)

제 검은 말들 속에서 예수님의 투명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예수님의 이 엄하고 분명하신 말씀이 저를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세상의 저 못된 자들, 엄청난 악을 저지르고 사람을 속이는 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씀은 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저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저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참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자신의 위선과 거짓과 비겁함과 어두움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성령의 빛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저를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친구가 보낸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습니다.

사진 속에서 그 친구가 저를 바라보고 웃고 있습니다.

아팠던 옛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너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드러나는 것은 아직도 언제나 부끄럽기만 한 자신뿐,

진심으로 참회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감사와 회오의 눈물이 납니다.

<돌아보면 매일이 축복입니다>중 "용서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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