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여름 방학을 홋카이도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보냈습니다. 8월 16일부터 9월 26일까지 만 사십 일을 그곳에서 머물렀습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오래전부터 꼭 한번 와 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친우인 K신부님께서 우연찮게 주선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움직입니다.

올해는 여러모로 제 삶의 전환기였습니다. 오랜 양성을 마치고 사도직에 파견되었고, 또 나이가 만으로 마흔이 되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다른 분들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마흔이 되었다는 게 도무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마흔이 되면 대부분 삶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는 안정기에 접어듭니다. 사회와 가정에서 각자 자기의 자리를 다지고, 인격과 신앙이 자라고 깊어지는 체험을 합니다. 공자는 마흔이면 불혹의 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성과 도덕의식과 감정이 균형 잡히고 하나로 모인다는 말입니다.

저는 지난 1월에 마흔 살 생일을 조촐하게 지냈습니다. 오랜만에 병석에 계신 부모님과 함께 미역국도 먹었습니다. 그날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만으로 마흔 살 생일. 무엇 하나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저는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삶은 단순하지만 깊게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스러움에 신음하면서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당신께 드리는 가장 큰 봉헌입니다. 당신께서는 제가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오로지 당신의 은총에 맡길 때까지 언제나 인내롭게 지켜보고 계십니다. 저는 제 자신과 세상의 한계 때문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으려는 노력에 당신의 은총, 당신의 목소리가 함께하십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더 이상 밖에서 들려오지 않고 제 안에서 들려옵니다. 그것은 참목소리를 따라가게 해 주는 초대입니다. 저는 늘 생소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들 때문에 어리둥절하고 방황하고 힘겨워하면서도 이 모든 혼란을 뛰어넘는 곳에 계시는 당신과 당신의 현존이 내려 주시는 고요와 평화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기도드리고 싶은 열망이 솟아오릅니다. 당신의 신비가 제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부드럽게 안아 주시는 당신의 손길을 느낍니다. 제 모든 것을 받아 주고 이해하고 사랑하시는 당신의 따뜻한 눈길을 느낍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

올여름의 사십 일은 마흔 번째 생일에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하루하루 음미하고 확인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깊게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욕심이 생기는데 그건 다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롭고 허전하니까 유명해지고 싶고, 힘을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아닐는지요. 저도 요새는 그런 욕심이 부쩍 늘었습니다. 한동안은 존경하는 예수회 선배 S신부님을 떠올리며 ‘나도 저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고,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나도 이 정도는 써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장난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심각하게 울려오기도 하는 이 욕심의 목소리들…. 그것은 모두가 외로움에서 생기는 목소리입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머무??다. 기도를 하여도 들리고 산책을 하여도 들리고 밥을 먹어도 들리고,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더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런 부끄러운 목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가장 진실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함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하느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모세께서는 계약을 받기 위해서 사십 일을 기도하셨고,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께서도 새 계약을 세우기 위해서 사십 일을 기도하셨듯이, 저도 이분들을 흉내 내어 보았습니다. 그냥 흉내만 낸 것은 아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열망, 그리고 그곳에서 울려오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내려 주기 위해서 사십 년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느님의 인내에 놀랄 뿐입니다. 아멘. 

<돌아보면 매일이 축복입니다>중 "마흔에 떠난 사십 일간의 기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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