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돈 버는 선택 vs 돈 버리는 선택> 편집자 노트

달팽이와 집게가 부럽습니다

 

집 근처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지 두 장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이 광고지를 매우 감명 깊게 본 나는(실은 전화를 해 보려고…) 사진으로 찍어 그 감동을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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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광고지를 보며 놀랐던 것은

첫째, 4000만 원만 있으면 방 두 개에 거실과 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갈 수 있다고?

둘째,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다니! 달팽이, 님 좀 짱인듯!

셋째, 이런 카피 정도는 써야 공인중개사(또는 건물주)가 될 수 있나?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4년 후, 『부동산, 돈 버는 선택 vs 돈 버리는 선택』 원고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 광고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평생 집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는 이유로 연민의 대상이 되곤 하는 달팽이. 하지만 사실 달팽이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진 행운아다. 달팽이의 껍데기는 산소와 수분을 공급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훌륭한 집의 역할을 한다. -본문 27쪽

 

휴대폰을 뒤져 사진을 찾았다.(맙소사! 아직 있다!) 워낙 숫자에 약하고 경제관념이 없지만, 이 원고를 읽고 또 읽다 보니 그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첫째, ‘4000만 원’ 앞에 있는 단어 중 한 글자(‘실’)를 허투루 읽었다.

둘째, 달팽이보다 더 ‘킹왕짱’인 생물이 있다!

셋째, 카피는 좋은데 맞춤법이 참…(아, 이건 아닌가?;;)

 

길을 지나다 보면 ‘잔여 세대 최대 3천만 원 할인’, ‘회사 보유분 특별 분양’, ‘프리미엄 보장제’, ‘실입주금 3천만 원으로 즉시 입주 가능’과 같은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동산 침체로 제때 팔리지 못한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들이 시간이 지체되면서 자극적인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본문 67쪽

 

저자는 나 같은 ‘호갱님’을 많이 만났나 보다. 책에 따르면 4000만 원은 말 그대로 대출금을 제외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광고지의 경우는 개인 소유의 빌라이지만 저자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예로 들며 최초에 약속한 분양가보다 입주할 때 내는 금액이 더 큰 경우가 있으니 신중하게 투자할 것을 당부한다.

 

집 없이 태어났지만 내 집 마련의 고수로 살아가는 생물도 있다. 바로 집게다. 집게는 다른 게들과는 달리 딱딱한 껍데기가 없어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줄 집이 꼭 필요하다. 집게는 언제든 집을 취향대로 골라서 교체할 수 있다. 속이 비어 있는 껍데기를 집 삼아서 짊어지고 다니다가 더 좋고 큰 껍데기를 보면 먼저 살던 집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새집으로 이사한다. -본문 32쪽

 

집게, 네가 짱이다! 집이 없으니 달팽이보다 불쌍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집게의 생이야말로 정말 ‘쿨’하지 않은가! 언제든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이고 있던 집을 던져 버리고 새집을 뒤집어쓰면 그만이라니.(게다가 새 껍데깃값을 할부로 치르지도 않는다!) 집을 바꿀 때 아주 잠깐 속살을 노출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저자의 말처럼 집게의 이러한 행동은 마치 더 넓고 좋은 집을 찾아 이사를 다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집게에게도 집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몸에 비해 너무 큰 집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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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쉽다. (집값이 내려가든 올라가든 남 얘기처럼 느껴지는 나 같은 부동산 까막눈에게) 이 책만큼 온 생애 주기에서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제시하고 선택의 ‘기준’을 차근차근 알려 준 책은 없었다.

기초적인 부동산 상식부터 현실적인 노후 대비 방법까지 궁금했던 질문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저자(와 달팽이와 집게)는 너무도 당연해서 잊고 지냈던 사실들을 알려 주었다. 이를테면 모든 선택의 시작은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 그렇게 ‘기준’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면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들 말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몸에 맞는 집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이토록 전셋집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에 맞지 않는 집을 이고 지고 낑낑거리지 말고, 기준을 갖자!’는 반성으로 끝을 맺기에는 너무 힘든 시절이다. 다만, 우리의 수고를 공감하는 이 책으로 나와 같은 부동산 초보들이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조금 더 수월하게 바람을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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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키 편집실 지렁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