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소설은 웬만해선 안 읽는다는 분들 중에는 이름을 기억히기가 어려워서, 라는 이유를 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필립 리브의 판타지 SF 어드벤처 4부작 ‘견인 도시 연대기’에도 역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혹시,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리는 독자를 위해 (작가인 필립 리브가 어떤 뜻을 숨기고 이름을 지었는지, 아니면 흔히 영국에서 쓰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등장인물의 성격 혹은 활약상과 이름의 뜻을 재미로 한번 연결해 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견인 도시 연대기 등장인물 이름의 비밀 (1)

이름을 보면 캐릭터가 보인다! _ 헤스터, 톰 내츠워디, 렌, 프레야, 위논 제로

헤스터(Hester)는 영국에서 흔히 쓰는 여자의 이름으로 에스더(Esther)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에스더는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대인의 딸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왕비가 되어 하만의 유대인 살해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 된 인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생사의 고비마다 톰을 구하고 스토커와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여성,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아참, 미국의 소설가 N.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 글씨>의 여주인공 이름도 에스더였던가요. 간통으로 사생아를 낳고 가슴에 주홍색 A자를 다는 형벌을 받았었지요. 헤스터 역시 평생을 흉측한 얼굴로 살아가는 데다 그 얼굴 때문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네요. (그림은 집필 초기, 아주 초기 필립 리브가 그린 헤스터의 모습이랍니다. 얼굴의 흉터는 그 때부터 있었지만 작품 속의 헤스터만큼 흉칙한 얼굴은 아니군요. 그림 출처 필립 리브 블로그)

헤스터 쇼가 평생을 사랑한 톰 내츠워디(Tom Natsworthy)

헤스터 쇼는 평생 오직 톰만 사랑합니다. 흉측한 얼굴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사랑이 식을까, 혹 톰이 자기를 떠날까 전전긍긍 집착합니다. 헤스터 쇼에게는 톰이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톰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못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녀의 사랑을 받는 그의 이름은 톰(Tom)입니다. 참 평범한 이름입니다. 평범한 이름답게 톰은 주요 인물이자 때로는 주인공이지만 참 평범합니다. 그리 용감하지도 그리 명석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마음 따뜻한 남자이지요.

하지만 그의 성에는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natsworthy는 영국에서 흔히 쓰는 성은 아닌데 말이죠, <성균관 스캔들> 식으로 파자를 해 보면 이렇습니다. nats+worthy. nats는 영국에서 흔히 쓰는 남자 이름이고요 worthy는 가치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헤스터에게는 (평생을 걸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남자인 것입니다.

물론, 좀 심술궂게 not+worthy의 변형이라고도 우길 수도 있겠네요. 어차피 이름이라는 게 그대로 조합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헤스터와 톰의 딸, 히로인 렌(Wren)

헤스터와 톰의 딸이기도 한 렌(Wren)이라는 단어에는 ‘굴뚝새’라는 뜻도 있습니다. 평소 앵커리지의 평온한 일상을 못 견뎌하며 모험을 원하던 렌에게는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이름이 어울리네요. 하지만 굴뚝새는 집의 처마 밑, 건물 틈바귀, 건물 등 인간과 가깝게 산다는 점에서 모험을 떠났지만 떠나자마자 집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렌과도 잘 어울립니다.

후에 렌은 아프리카 소년 테오를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비행선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의 이름에 맞게 ‘새’처럼 생활하게 되지요.

앵커리지의 여왕 프레야(Freya)

한때 헤스터의 연적이었고 톰에게 마음을 두었던 앵커리지의 여왕이자 시장인 프레야는 당연히 여자 이름입니다.

프레야는 Frigga라고도 불리는데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라고 해요. 오딘의 아내이며 예지 능력을 갖고 있으며 결혼과 출산의 수호신이라고도 하네요.

<사냥꾼의 현상금> 프레야 또한 앵커리지의 여왕이자 시장이면서 앵커리지 백성들에겐 라스무센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로서 ‘얼음 함정이나 사냥꾼 도시들을 피하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얼음의 신들과 꿈속에서 대화’를 하는 사람으로 추앙되었으니 맞춤한 이름입니다.

아참, 영국 여성 중에 프레야 스타크에서 따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레야 스타크는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위험한’ 중동 지역을 여행했답니다. 그 공로로 그녀는 왕립아시아협회 버튼메달(1933년), 왕립지리학회 창립메달(1942년), 왕립중앙아시아학회 퍼시 사이크스 기념메달(1951년) 등을 받았고, 1972년 대영제국의 데임(여성 작위)이 되었대요.

<사냥꾼의 현상금> 프레야 또한 책 속에서 페니로얄 교수의 말만 믿고 앵커리지 백성들을 이끌고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죽은 대륙 ‘아메리카’로 도시를 이동하려 했으니 탐험가 기질도 비슷하군요. 

스토커 팽을 없애고자 하는 닥터 위논 제로(Oenone Zero)

위논(Oenone)은 트로이 부근에 있는 케브렌강 신의 딸이랍니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화근이 될 거라는 예언에 따라 버린 아들, 바로 파리스와 결혼한 인물이랍니다.

트로이 전쟁 중 남편 파리스가 화살에 맞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오랜 세월 버림받은 상처 때문에 그의 치료를 거절해 결국 파리스는 죽음을 맞고 그녀는 슬픔에 못 이겨 자살했다고 전해집니다.

위논의 뜻은 그렇다치고 제로는 또 무엇을 의미할까요? 위논과 제로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걸 설명하면 너무 큰 스포일러가 되니 3권 <악마의 무기>와 4권 <황혼의 들판>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알면 더 재미있는 이름의 비밀, 원하신다면 이어집니다!

(원하시지 않으셔도 써놓은 게 있어서 한 번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