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 브라이슨, 맞다.
저자 정숙영은 자신이 빌 브라이슨 따라쟁이로 보일까봐 걱정이란다.
그런데 나는 자꾸 빌 브라이슨 생각이 난다.
그가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주한 『나를 부르는 숲』이란 책을 아시는가.(몰라도 상관없다)
빌이 친구와 함께 3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산길을 걷는데,
그래서 온통 산 이야기만 나올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사진 한 장 없다)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주인공들의 온갖 에피소드가 시종일관 이어진다.
그렇다. 왜 저 사람한테만 저런 재미난 일이 잔뜩 벌어질까 싶은 그런 에피소드 말이다.
정숙영은 인도차이나를 여행하는데, 그것도 일을 하려고 떠난 여행인데, 그곳에서, ‘일’이 벌어진다.
이런 입심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특히 단상 같은 짧은 글에 아름다운 사진으로 꾸미는 것이 대세인 우리 여행서 시장에서
정숙영의 존재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전작 『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에서 사진 한 장 없이 신국판 400쪽을 훌쩍 넘는
입심을 자랑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400쪽이 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그래도 이 책에는 사진이 좀 있다) 


2.
이 책, 동남아 여행 앞두고 정보가 필요한 분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유명 관광지나 휴양지도 별로 없고, 그곳에 어떻게 이르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런 분에게 권한다.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분.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일상이 너무 숨 막혀서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분.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여행병이 자꾸 도지는 분.
이렇게 말하고 나니 무슨 약 장수나 인생 상담실 같지만,
책에는 실제로 이런 분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세 번째에 해당한다. 서울 옥탑방의 살인적인 더위도 싫었고,
개인 사정으로(술 먹고 달리다가 팔이 부러졌다...) 한동안 번역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 글감옥에서 떠올린 것이 ‘생계형 배낭여행’이었다.
기왕이면 해외에서 일해보자! 참 기막힌 발상이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마흔을 맞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번역을 할 정도로 어학실력이 되는데 왜 대기업 안 가셨어요?”
“회사 다니기 싫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조직생활은 안 맞을 것 같거든요.”
“이게요(지뢰찾기), 꼭 사법 고시 같아요. 다 해놓고 마지막에 두세 개에서 꼭 터진다고요.”
현실을 도피하는, 혹은 현실에 목매는 무능한 청년들로 보이는가.
여행은 그런 거다. 그곳에서 이곳을 묻는 것.
유쾌한 에피소드 속에 떠나는 자만이 구할 수 있는 답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