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병’ 빠진 신이 된 소년

청소년기 카오스와 극복 담은 기발한 발상·유머 가득한 소설
혼란 뒤의 희망에 상상력 더해

 

한겨레, 2012년 6월 16일자, 16면

 

문학은 인간을 탐구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청소년문학은 청소년기의 인간을 탐구한다. 요즘 들어 우리 문학판에서 전에 없이 청소년문학이 상승세에 있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기의 인간들에게 부쩍 관심을 품고 그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는 뜻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 관심은 주로 미혼모, 학교폭력, 자살, 가출, 가족 갈등 같은 부정적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 외부 세계와 극심한 불화를 겪으며 안으로도 치열하게 뒤채는 청소년기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자칫 청소년문학의 획일성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옴치고 뛸 수 없는 환경의 아이들 삶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는가. 우울한 질문이 비집고 나온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이 책, <신이라 불린 소년>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 놀라운 상상력의 작가는 청소년기의 한 남자아이, 밥을 ‘신’으로 설정한다. 엄마는 다른 신들과의 포커 게임에서 딴 지구를 아들에게 넘긴다. 우주에서도 가장 후진 자리에 있는 이 작은 별을 얼떨결에 맡게 된 밥은 천방지축의 천지창조 작업 뒤, 엉망진창으로 지구를 다스린다. 아니, 다스린달 것도 없이 하는 일이라고는 예쁜 지구 여자애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뿐이다. 그가 자기의 피조물에게 작업을 거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황소나 황금비로 변하는 것도 해봤고, 꿈에 나타나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방법도 써봤다나. 이 ‘신’이 사랑의 열병에 들떠 뒤척일 때마다 지구는 홍수와 토네이도와 역병과 지진과 전쟁 같은 난리를 겪어야 한다. 참을성 많은 늙은 집사는 그 뒤치다꺼리에 골머리를 앓다가 급기야 사표를 던진다.

 

이 소설의 설정과 사건이 무엇의 비유이고 패러디인지는 명백하다. 청소년기의 인간은 거의 신적인 권능으로 주변 세계에 카오스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카오스의 핵심에는 “지구 중심부처럼 밀도 높은” 열정이 있다. 그 서툴고 거칠지만 애틋하게 열렬한 열정은, 방황 끝에 뭔가를 만들어낸다. 어이없고 감동적인 하나의 세계를.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청소년 신 밥은 죽을힘을 다해 기적 같은 해결 방안을 내놓는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겉보기에는 자기 자신과 주변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도, 안으로는 해결을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온 해결책을 어른들은 모두 하나의 기적으로 보고 찬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이 작가는 전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의 발상은 기발하기 짝이 없고, 생기 넘치는 번역으로 살려낸 문체는 유머가 가득하다. 읽으면서 자주 낄낄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중세 때 쇠말뚝에 박혀 죽어가던 소년(처럼) 외로움에 관통당한 기분”이라는 밥의 고백에서 보이듯, 청소년에 대한,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아픈 자각을 주는 대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 작가가 미더운 것은 이 모든 혼란 뒤에 충천한 사기와 희망을 배치해 놓았다는 점이다. 상투적인 희망이 아닌, 진심으로 동의하게 만드는 희망을. 잠깐 왔다 사라지지만 언제든 다시 돌아올 희망을. 하긴, 절망과 낙담으로 끝낼 요량이었다면 이 범우주적인 상상력은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서정/작가·중앙대 강의교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379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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