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짜, 진짜 중요한

오늘은 캐릭터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캐릭터는 인물과 성격, 특징을 동시에 뜻하는 말입니다. 소설 안의 모든 인물들도 캐릭터이고, 그들이 행동하는 패턴이나 스타일도 캐릭터이지요.

세상의 모든 글쓰기 관련 책들이 캐릭터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진짜,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죠. 얼마나 중요하냐면 제대로 된 주제, 배경, 플롯이 없는 창작물이 훌륭한 캐릭터 덕택에 좋은 반응을 얻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게 어딨냐고요? 톰과 제리, 루니 툰즈(대피 덕, 로드로너와 코요테 등이 나오는 만화 영화)가 그렇지요. 이들의 배경은 아무 설명이나 목적 없이 우주든 해저든 뭐든, 어디로 가든지 상관없어요. 오로지 캐릭터들이 이미 자신이 보여줬던 개성과 그렇게 쌓여서 발전한 개성으로 상대방과 관계를 이끌죠. (특히 즉각적인 웃음을 위해서 요즘은 몸 개그라고 부르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대폭 활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합니다. 응전하고, 변화시키고, 굴복할 만한 주제나 배경, 세계관이 전무한 만큼 당연한 선택이죠.)
이처럼 캐릭터는 혼자서도 설 수 있을 만큼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2. 비스트(Beast)

저는 가장 먼저 일관성 있는 주제를 선정했어요. 캐릭터가 많은 경우, 창작자가 관리를 못 한 까닭에 중구난방 움직이다가 자멸할 가능성이 있어요. 해서 고심 끝에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발전 방향을 일관성 있게 두었어요.
소설의 첫 제목은 비스트(Beast, 야수)였어요.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소설 내의 남자 캐릭터들은 대부분 불량한 사람입니다. 이기적이고, 무정하죠. 그런 그들이 서서히 인간성을 찾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제목을 지을 때는 복합적으로 짓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인공 패거리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그들과 상대편인 초 엘리트 들을 가리키는 말이라 꽤 마음에 들었지요. 너무 흔한 것이라 애써 바꾼 현재 제목도 역시 같은 방향을 이어받아 다중의 대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필요에 의해 만들었습니다. 몇몇은 꼭 내가 이런 인간군상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보통은 이때 이런 인물이 필요하고, 이런 인물들은 이런 기능이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소설 진행시 좋겠구나 하고 판단해서 창작했어요. 필요성도 세밀하게 생각하지 않고 굵고 간단하게 판단했어요.
일테면. 소설은 누군가 시작해야 일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우선 사고를 쳐서 일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필요하죠. 그런데 시작하면 끝을 맺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소설은 미완이 되겠죠. 이래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최소 한 명 필요합니다. 네, 끝이네요. 할 말 다 했습니다. 두 명 만들면 사실 소설 캐릭터 만들기 부분은 끝입니다. 누군가 일을 벌이면 누군가 해결하는 게 소설의 본질입니다.
......헤헤헤, 맞아요, 맞아. 사실 그럴 리 없겠죠?
극단적인 경우에는 단 한 명으로만 소설이 이끌어지는 창작물이 분명 있어요. 연극이나 순문학에서 간간이 볼 수 있죠. 모노 드라마가 그렇고, 누보 로망처럼 일개인의 의식을 분초까지 좇는 식도 있겠고. 그러나 장르 문학은 불가능해요. 재미난 플롯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고, 외부에서 주된 사건이 일어나는 장르 소설에서는 하드 보일드 소설들이 제시했던 만능인(냉철하고 다정다감하고 똑똑하고 터프한 탐정!)이나 버디 스타일(개성적이며 상호보완적이고 대치되는 두 인물이 파트너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패턴) 정도가 최소 인원 활용에 도전하네요. 

3. 그래서 어떻게?

보통 상황이 필요를 낳죠. 비가 오면 우산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에요.
소설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 그리고 국가를 조종하는 엘리트들과 싸워야 합니다. 어렸을 적 주먹다짐을 해 보신 분은 절실히 아시겠지만 사람은 한 명이랑도 싸우기 힘들어요. 그런데 국가라......어마어마한 상대죠. 엄청난 필요성을 낳고요. 이를 위해서 캐릭터들은 대폭 증강됩니다. 거칠어도 빠른 이해를 위해 당시의 상념들을 그대로 추려 적어 보겠습니다.
머릿속의 흐름은 이랬어요.

’사건을 벌이는 놈은 홍대에서 술취한 여자를 주워 오는 놈이니까 꽤 밝히고 여성(여자 말고 사회적인 위치로서의)을 싫어하는 놈일 거야. 여자를 자주 밝히려면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하니까 쌈도 잘하고 괄괄하고 터프한 놈이겠지. 막장으로 사는 놈으로 가야겠다. 이러지 않으면 나중에 국가를 상대로 싸울 때 꼬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어. 화이트 칼라보단 블루 칼라가 폭력 앞에서 아무래도 좀 더 의연하지.’ 이래서 강병남이 태어났습니다. 

다음은 61B. 그녀는 강병남처럼 사건을 열어가는 캐릭터 중 하나로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사명을 지녔어요. 문제는 61B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말할 수 있다면 스릴러의 덕목 중 하나인 ’예측 불가능성’을 확실히 침해한다는 사실이죠. 초반 25페이지부터 적의 정체가 드러나는 책을 누가 보겠어요?
무조건 입을 다물게 해야죠. 말을 못 한다고 설정하자, 그녀의 위상도 따라서 정해졌습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 치로 하나는 그녀의 미모와 순진무구함, 또 하나는 바코드를 주었어요.

이번에는 강병남의 4인조 후배들. ’이상하게 괄괄하고 터프한 인간 옆에는 역시 괄괄하고 터프한 인간들이 잘 모이더란 말씀이야. 그것도 과도하게 존경하고 형님으로 모시는 일이 흔하고. 마침 잘됐네. 나중에 액션 씬에서 비장미를 흐르게 하기 위해선 총알받이들이 필요한데.’ 
때문에 주태 말고는 나머지는 대사도 거의 없고, 외모 묘사 같은 것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 원래 주태도 4인조 중에 하나라서 중요한 장면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터로 성장하지 뭐예요? 즐거우면서도 무척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오기호의 경우. ’직접 궂은 일을 도맡을 인물들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각종 장비나 정보 분석에 빠삭한 지원 팀 수장격인인물이 필요한걸? 소설적인 재미나 평소 하고팠던 잡설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오타쿠스러운 남자애가 낫겠다.’ 안 그랬으면 오기호는 만능의, 좀 현실감이 떨어지고 재수떼기 없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겠지요. 워낙 재주가 많은지라.

유신한의 경우. 주위에 그런 사람 없으세요? 크게 노력하는 것 같지 않은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까닭에 인간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는 친구요. 보통 이런 패턴의 사람들은 자기 식대로 살기 때문에 매력적이긴 하나, 일반적인 의미의 상식이나 개념이라는 게 전무합니다. 같이 놀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것들을 할 수는 없어요. 약속도 말도 안 되게 늦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취소하고. 주위에 비슷한 녀석이 하나 있기 때문에 재빨리 써먹었어요. 이야기가 무겁기 그지없을 것  이 분명했기에 엉뚱한 행동과 사고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좀 더 밝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서 활약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윤직과 공재 여러 모로 거울상인 인물들입니다. 강병남, 오기호, 유신한,   후배 네 명 등이 시작을 열기 위해 모였다면이들은 요소나 요직에 있기에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진 것이지요. 이들은 누군가 시작하기를 (자의 반, 타의 반) 기다리다가 결국 강병남 패거리를 만나 일을 벌입니다. 위치만 다를 뿐 비슷한 패턴으로 비슷한 목적을 이루고 싶어 해요.
국가나 기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좀 더 뛰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회사 측 인물들은 하나같이 육체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 사회적 위치 등이 뛰어나도록 설정했어요. 이런 도움이 없으면 일반인에 불과한 강병남 패거리들이 살아남을 수 없었겠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양소정의 위상이 상승한 과정은 주목할 만합니다.

처음 초고를 완성했을 때 양소정은 그렇게 두드러진 존재가 아니었어요. 마치 주태처럼요. 국가를 위협해서 움직이는 조직과 함께 움직이다가 개심하면서 힘을 북돋는 정도로만 구상했습니다. 인물상도 평면이어서 공감하지도 않는 주제에, 처음 만난 혜연에게 일백퍼센트 제대로 협조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나 자생한 주태와는 달리, 양소정은 초고 검토 인원 중 한 사람인 여자 친구의 간단한 의견 제시로 탈바꿈합니다.
여자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소설이 좋긴 한데 온통 남자들밖에 활약하지 않는다고요. 여자들이 정 줄만한 캐릭터가 거의 없다고. (남자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그 꼴이고.) 듣고 아차 싶었어요.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던 것이지요.
세상 사람의 50퍼센트는 여자예요. 특히 출판 시장에서는 남자보다 여자가 도서에 지출을 많이 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 대해 좀 더 자주 지지를 표명합니다.  
꼭 여자들을 의식해서 쓸 필요는 전혀 없어요. 자신이 원하는 게 있고, 그걸 쓰고 싶으면 그게 반 여성적 정서를 듬뿍 담고 있어도 써야 합니다. 창작자가 창작하기 전부터 사전 검열로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만큼 나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참담한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감수하고 책임져야겠지요. 책 나오고 엄마한테 크게 욕을 먹는다든가, 아님 연이 끊긴다든가. ^^;)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닌 이상, 전술한 내용은 음미할 가치가 있어요.
통계로 보면 남자보다 여자가 선해요. 2004년 일본 범죄백서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범죄 발생률을 살펴보면 여자는 모든 범죄에서 남자보다 1/6~1/20 수준으로 저질러요. 여자는 악인이 적습니다.
전형적인 아줌마처럼 개인 레벨에 집중하지 않는 한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형님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서 타인을 나란히 바라보고 협조할 개연성이 존재하죠. (여자 악인, 여자 소인배가 없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이처럼 명분은 차고 넘치죠.
게다가 현실적으로 소설 내 남자들은 전원이 악인 아니면 사회 부적응자들인 판에 주요 여자 캐릭터 중 비키니는 사실상 매춘을 하고, 안혜연은 과거 악인이었고, 61B는 백치란 말입니다. 제대로 된 인간들이 한 명도 없어요. ^^;;;;;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상의 확립은 필수였죠. 실리까지 있는 판에 무얼 망설이겠어요.
결국 소정은 좀 더 이상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용감하고, 윤리관이 투철하고, 지적이고, 이상적이고. 
뭐, 주위에 이런 공무원 본 분 거의(전혀?) 없겠지만 소설에서나마 추구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4. 뒤돌아보니

이처럼 목적과 영감의 구체화를 통해 세상에 나온 캐릭터들은 사건 속에서 변화하거나 성장했습니다. 더 나쁘게는 중간에 사망했죠. 지금 자세히 살피려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이런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바뀌었었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부족한 자신을 드러내고, 신비감을 해치는 부작용이 좀 있는 듯하지만 다시 한 번 되짚으면서 저도 분명 좋은 공부를 하네요.

다음 편에는 그들이 어떤 경로로 문제에 봉착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 창작해서 제시했는지로 이을게요.

설레이는 첫 만남에 이어 좀더 흥미진진한 소설 속 세상을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 어떠하셨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