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도 이제 엉긴난다 아닙니꺼. 나물죽에 짐치 쪼가리에 와 우리는 묵는 것도 시원찮은 데 아부지가 만든 그럭에다 밥도 묵으면 안 됩니꺼? 근동이는 지 아부지가 만든 그럭에 다 밥 묵는다 합니더.’

토기장이 만오, 와 우리는 안 되는교? 하늘도 무심허다, 주인상과 하인상, 무엇보다 특별한 토기, 수창아, 마이 아프나, 가슴에 품은 토기, 하늘이시여 제발, 바람에 몸을 내맡긴 촛불, 보라색 꽃길. 이 책은 소제목을 달아 10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차례에 나온 소제목만 봐도 가난한 토기장이 부자간의 애틋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순장 풍습이 금지되고 껴묻거리를 더 필요로 했던 시대, 개인 토기 공방에서 한평생을 흑만 주무른 만오의 솜씨는 소문이 나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여러 모로 설움이 많고 누리지 못하는 것. 죽은 사람이 저 세상에 갈 수 있게 갖가지 토기를 껴묻거리했던 시대였지만 그것도 평민은 생각지도 못한 일로 귀족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만오의 아들 수창이는 배곯는 것도 힘든데다가 아버지가 평생 장인 정신으로 빚은 토기에 밥 한 번 못 먹는 것이 불만이다. 친구 근동이네는 지 아버지가 만든 토기에 밥을 먹는데, “와 우리는 안되는교?”하며 목울음을 삼키던 수창이.

나물죽에 하루를 때우는 것도 힘든 중에 장맛비는 멈추지 않는다. 토기를 구워내는데, 비는 불청객. 게다가 나라에 돌림병까지 돌아 걸렸다 하면 무더기로 죽어나가던 때였다. 

‘지금 세상에는 하인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그대로 따라해야 하지만 저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이다’

   

 주인과 하인, 양반과 천민, 있는 자와 없는 자,,, 제 아무리 상하 관계에 금을 그었다 해도 태어나고 죽는 것은 같은데, 살아가는 그 과정은 있는 자들 밑에 깔린 없는 자들은 너무나 궁핍했고 서러웠다. 아버지가 빚은 두 개의 인물상을 보며 수창이와 근동이가 나누는 대화는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오죽하면 방울을 든 사람만이 저 세상 길을 알 수 있기에 하인이 주인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이 세상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하인이지만 저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이 대화에 백성들이 그간 주인한테 짓밟힌 한에  저 세상 가는 길만큼에서는 앞장서 보고 싶은 염원이 너무나 잘 나타난다.

김진영 작가 님은 참말로 섬세한 분이는 걸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감지하게끔 복선으로 깔아주시는 문장이 슬프면서도 정갈하다. 수창이와 근동이가 만오 토기 작업장에서 내려오며 ‘쑥부쟁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 왔다’라 하고, ‘이 눔의 비, 아주 끝장을 볼란가부다’라며 계속 ‘비’에 일어날 일을 감지하게 한다. ‘느닷없이 마당에 있는 오동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굵은 가지 하나가 바닥에 퍽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이 수창이의 죽음을 암시했던 걸까? 근동이와 수창이가 산에서 내려 온 후부터 수창이는 쌀뜨물 같은 물똥을 싸며 까무러친다. 걸리면 죽는 그 전염병에 걸린 것이다.

'정태 아부지요. 이번에 만든 그 토기는 우리 수창이 줄라고 만든 겁니더. 인자 토기 공방을 나라에서 관리하믄 내 만들고 싶은 건 못 만든다 칸께 정성을 다해 만들었심더. 날마다 아부지 잘못 만나 고생만 한 우리 수창이, 아부지가 만든 그럭에다 밥 먹고 싶다 카는 우리 수창이 저 세상 갈 때 껴묻거리로 쓸라고 했심더.'

역시 한국안데르센상을 받은 이 책이 주는 감동은 깊고 울림의 파장이 넓다. 신라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 것의 대표인 토기라는 소재를 들어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렇게 독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 수 있게 하다니! 아버지가 빚어준 토기를 타고 방울 소리를 울리며  쑥부쟁이 꽃길로 웃으며 저 세상으로 간 수창이. 마지막 이야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떠올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역사의식도 심어주고 장인정신으로 빚어내는‘토기’도 알게 하고, 무엇보다 토기장이 만오와 아들 수창이가 나눈 애틋한 사랑을 많은 아이들이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