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군말을 붙일 필요 없이 그냥 참 좋은 책이다. 책을 읽을수록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과 삶의 철학이 자랑스럽게 여겨지고 옛그림 한 점이라도 그냥 소홀히 넘길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한다.

우리 그림을 보는 기본 원칙은 옛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보되, 우선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감상하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감상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에 입각해 그림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설명한다.

물론 어느 곳에서 그렇듯 예외는 있다. 병풍의 경우 좌우 마주 보고 접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는 폭끼리 어울리게 왼쪽 폭의 구성은 사선이 반대로 그려진다고 한다.

김홍도의 그림에서 여백의 구조와 구심적, 원심적 구조를 설명하고 여러 가지 세부 그림을 통해 작은 선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표현한 김홍도의 예술적 경지가 얼마나 높고 위대한 사람인지 말해준다.

그림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 문화와 역사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옛 그림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선인들의 인생관이나 우주관에 대해서도 숨은그림찾기하듯 그 방법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면서도 탱화를 그릴 때는 종교적인 이유로 화려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다는 점, 음양오행에 기초하여 건물을 짓는 점, 선비나 학자는 상체가 길고 다리를 짧게 그리지만 아랫사람은 부지런히 일하기 좋으라는 의미로 머리를 작게 다리를 길게 그렸다는 점, 생활하는 중 사람들의 바람을 그림에 담아 가까이 두었다는 점, 지배층이 가치를 두었던 문화의 바탕은 도덕성이었다는 점, 우리 예 그림은 주로 손을 감추어 그렸기 때문에 일류화가라도 손을 그릴 때는 솜씨가 부족하다는 점, 검버섯이나 사시 눈도 교정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던 그림이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보이기에만 예쁜 그림으로 수준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등등 알차고 의미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 이재의 초상이라고 알려진 그림이 사실은 이재 손자 이채의 초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이 긴장감이 느껴지며 재미있었다.

특히 우리 그림을 대할 때 아주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데, 우리가 현재 접하는 표구방식은 대부분 일본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표구 방식은 그림 옆에 띠가 가늘고 화려하지 않으며 특히 병풍의 경우 우리나라 병풍틀은 아래쪽에 발이 달려있다. 126쪽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표구 때문에 송하맹호도의 품격이 떨어지는 장면을 보니 표구 하나에도 세심한 정성을 기울인 우리 선조의 예술혼이 그대로 느껴진다.

95쪽에 행성을 혹성이라고 표현하고 149쪽에 장닭을 장탉이라 표기하고 군데군데 작은 지문으로 '청중 웃음, 감탄, 박수' 등의 표현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용면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책이다.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기 전에 이렇게 우리 문화가 우수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높을 듯하다.

 

	과학자들도 사물을 보는 것은 눈이지만 그 눈은 오직 우리의 마음 길이 가는 곳에만 신경을 집중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본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옛 그림을 진짜로 잘 보려면 옛 사람의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려진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폭 속에는 여러 형상이 갖가지 모양으로 그려져 있지만, 요컨대 이 모든 것 또한 한 사람, 즉 화가의 마음이 자연과 인생에 대해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묘사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회화 감상이란 한 사람이 제 마음을 담아낸 그려 낸 그림을, 또 다른 한 사람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페이지 : 8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