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열사에 대해서는 수십년전 학생시절 수업시간에 들었던 짤막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국제평화회의에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할복자살로 자결했다는 이야기(사실은 할복 자살이 아님). 그러나, 그가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왜 죽어야 했는 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그런 애국지사가 한 명 있었다는 것 정도.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현 서울고등법원 검사이신 임무영님과 글을 쓰시는 한영희님의 공동 저작으로 되어있다. 두 분은 부부로서 글의 초안은 임무영님이 그리고, 작품화는 한영희 님이 맡으신 것 같다. 에필로그에 스스로 '검사는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전재했듯, 상상력을 형상화 시키는 소설가와 사실을 분석하는 검사의 시각차는 큰 편이다. 또 임무영님은 글을 읽다가 재미없는 부분은 내가 쓴 부분이고, 재미있는 부분은 아내가 쓴 부분이라고 농 처럼 말씀 하셨는데, 책을 읽어 보니 정말 단순히 농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준 열사가 국내 최초의 검사시보였다는 강조하기 위해 법정 장면들과 법에 대한 정의와 해석 부분들이 초중반에 많이 등장했는데, 다소 교육적이고 설명적인 것이 누가 봐도 검사님의 입김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았고, 후반에 들어서서는 극적 긴장감과 비장감이 감돌고, 가슴이 찡하게 마무리 되는 장면은 분명 작가인 아내의 솜씨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어찌보면 구한말의 사정 또한 우리는 국사시간에 배운 단편적인 지식들 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당시의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어이없이 일본에 국권을 빼았겼는 지를 자세히 들려주고 있다. 일본이 무력 위협 속에서 반 강제적으로 조약을 맺어버린 을사육적, 그래서 고종이 생각해 낸 것이 국제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우리의 입장을 알려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최근 우리는 티벳을 비롯하여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위해 세계를 향해 호소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력에 무자비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아, 안타깝구나'하는 정도 이상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우리의 입장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존재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회의장에 입장도 거부당한 채 자신들의 나라를 일본에 빼았기게되었으니 도와달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외침이 지금 피흘리며 투쟁하는 중국 소수민족들의 울부짖음 보다 그들에게 더 크게 들렸겠는가 말이다.

당시 파견된 이상설, 이준, 이위종 삼인중에 영어가 가능한 이는 이위종 뿐이었다. 일본의 계략으로 이위종 마저 자리를 비우게 되자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상설과 이준... 그들은 더 이상 무엇으로도 항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 결국 이준은 의미있는 유서를 남긴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마지막으로 세상에 자신들의 의지를 남기려 했다.

그러나 그 유서마저도 첫 발견자인 일본인에 의해 거두어지고, 의롭지만 허무한 죽음은 헤이그의 차가운 땅에 뭍히고 만다.  그 후 우리나라의 국권은 완전히 일본에 넘기게 되었고, 이상설도 이위종도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이상설은 러시아에서 십년간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했고, 이위종도 몇해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비극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저 한 시대의 그저 그런 사건이려니 하고 넘겼던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보니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의 국제 사회의 현실을 보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느껴야 했을 절박함과 고독감을 그리고 좌절감을 충분히 공감 할 수 있었다.  이런 책은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그리고 훨씬 이전에 누군가가 다루었어야 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이제까지 아무도 그들을 되돌아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에 다시 살려내준 저자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