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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한인터뷰] 예뻐지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소녀들의 이야기

뚱뚱해서 돼지라고 불리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있다. 몸에 딱 맞는 예쁜 옷은 꿈도 못 꾸고, 하필이면 소녀시대 멤버 ‘윤아’와 이름이 같아 ‘하마시대’라고 놀림 받는다. 미모와 인기로 교실을 장악한 그룹에게 찍힐까 눈치를 봐야 하고, 체중도 고민도 같아 늘 붙어 다녔던 유일한 친구는 갑자기 다이어트를 하더니 “너랑 있으면 ‘찐따’ 같은 기분이 든다”며 떠나가버렸다. 서럽고 속상해서 살을 빼고 싶지만, 유혹을 참지 못하고 갓 튀긴 오징어튀김을 벌써 몇 개나 집어먹었다. 최악이다.

고작 그 정도가 최악이라니, 하고 어른들은 말할 것이다. 경제다, 정치다 하며 분주한 어른들에게는 한갓 사소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그맘때의 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의 작은 놀림도, 군것질로 늘어난 1kg의 체중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거리다. 동화작가 이미애는 그 마음의 들썩임에 주목한다. 그녀는 교실의 가장 못나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힘든 시기를 순조롭게 헤쳐나가는 법을 일러준다. 그녀가 북앤에서 연재했던 <마법의 옷장>도 그런 따뜻한 마음이 듬뿍 담긴 동화다. 

<마법의 옷장>의 주인공은 뚱뚱해서 ‘하마’라고 놀림 받는 두 소녀, 윤아와 태연이다. 윤아와 태연은 예뻐지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마음에 갖가지 사건을 저지르며 아파하고 또 성장한다. 인터넷에서 동화가 연재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마법의 옷장>은 아이들뿐 아니라 딸을 둔 모든 어머니를 위한 동화이기도 하기에, 연재 당시부터 사랑을 받았다. 책 출간을 맞아 이미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마법의 옷장>은 북앤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동화책 연재는 흔치 않은 일인데, 처음으로 연재를 해본 소감이 어떤가.

“생각보다 많이 초조했다. 한 회 분량이 원고지 열한 장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다음 회를 써야 하더라. 그런데 재미도 있었다. 동화의 경우 한 번에 쭉 써 내려가다 보면 서사는 탄탄해지지만 상세한 부분을 살리기는 힘들다. 그런데 연재의 경우 매회 독자들이 읽도록 하기 위해 소소한 재미를 살리다 보니 재미있었다.   또 동화 연재가 활성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이들보다는 어머니들이 많이 볼 것 같았다. 평소에는 아이들을 의식해서 한자어도 다 빼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면에서 좀 더 자유롭게, 신나게 썼다.”

Q 혹시 연재하면서 정해놓은 작업시간이 있었나.   

“특별히 없었다. 당장 내일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많아 밤을 많이 샜다. 요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다시 읽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몰입’ 상태를 <마법의 옷장>을 쓰면서 겪은 것 같다. 한 줄 한 줄 느리게 써나가다가 어느 순간 속도가 붙어서 쭉 이어서 쓰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상태가 몰입 상태였던 것 같다. 나는 원래 글을 나눠서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가지 주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2~3년간 발효시킨 다음, 앉아서 열흘 만에 한꺼번에 쓴다. 그럴 때는 흐름이 깨질 까봐 화장실에 가기도 아깝다. 이번에 연재를 하면서 처음으로 글을 나눠서 써봤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Q <마법의 옷장> 출간을 기념해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재하는 동안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처음에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굉장히 감동했고,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밤새 쓴 글을 누군가가 읽고 질문이나 글을 써주고, 내가 다시 답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출간된 <마법의 옷장>을 아이들이 읽고 재미있으면 친구들에게도 소개했으면 좋겠다(웃음). 요즘 아이들은 용돈으로 다이어리나 책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는데, <마법의 옷장>도 아이들이 읽고 친구에게 직접 선물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Q <마법의 옷장>은 윤아∙태연이 또래의 딸을 둔 어머니들에게도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나는 외동딸과 늘 싸우면서 친구처럼 지냈다. 나도 잘 못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딸을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여자아이들은 이 시기에 이렇더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 어머니가 자기 딸이 이 책을 두세 번 읽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자기도 읽어봤더니, 딸의 행동이 좀 이해가 됐다고 하더라. 요즘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갖고 자란다는 것을 어머니들이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좋겠다.”

Q 주인공의 이름이 윤아∙태연인데, 그룹 ‘소녀시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가. 

“맞다. 두 아이들의 캐릭터를 구상하고 나서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녀시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유명 연예인들과 이름이 같은데 뚱뚱하면 얼마나 학교 생활이 고달플까라는 생각에 재미있어 하면서 이름을 정했다.”

Q 상철이는 윤아의 뚱뚱한 모습도 좋아해주는 좋은 남자친구다. 읽으면서 ‘정말 상철이 같은 아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환상일 수도 있지만, 내 글에는 항상 티없이 밝고 건강한 캐릭터가 한 명씩 들어갔던 것 같다. 동화를 쓸 때마다 서문에서 ‘여러분의 삶이 녹록하지 않고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여러분의 곁에는 여러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존재가 있으니 그 사람의 손을 잡아라’라고 이야기하는데, <마법의 옷장>에서는 상철이와 엄마가 윤아에게 그런 존재다.”

Q 윤아∙태연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중학생의 경우 사춘기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얻지만, 그 전 시기의 초등학생들은 어중간한 상태에서 나름의 고민을 안고 힘들어한다. 그 아이들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무해주고 싶다. 요즘 교실에는 보이지 않는 그룹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써니’ 그룹처럼 예뻐서 뭘 해도 용서받는 그룹이 있고, 체육을 잘 해서 잘 나가는 그룹이 있다. 그리고 아무데도 끼지 못해서 빙빙 도는 아이들의 애환이 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몇 번 강연을 간 적이 있는데,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말을 거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말을 걸고 싶어도 다가오지 못하고 쭈볏쭈볏 뒤쪽에 서 있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항상 그런 아이들에게 눈이 가고 보듬어주고 싶다.” 

Q 책에 예쁘고 인기도 많은 ‘써니’ 그룹이 등장한다. 교실 내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실제로도 존재할 것 같다. 

“한 교실 안에도 인정을 받는 아이와 인정을 못 받는 아이가 있다. 인정받는 아이들은 친구들뿐 아니라 선생님에게서도 인정을 못 받는다. 친구들한테는 무시무시하게, 잔인하게 굴고 선생님 앞에서는 싹싹하게 구는 아이들도 있다. 어른들에게 철저히 가려져 있는 그들만의 계급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런 것을 모른다.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점점 더 영악해지고, 어떤 아이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힘들어한다.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Q 요즘 아이들의 고민과 관련해 또 관심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요즘 아이들은 욕을 많이 하지 않나. 예전에는 욕하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린 애들이 어떻게 맹랑하게 저런 말을 입에 올리나’했는데 최근에는 그 아이들이 욕을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요새는 공부를 잘하면서도 노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 아이들은 멋있어 보이려고 욕을 하고, 또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의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서 힘들어 하면서도 욕을 한다. 그런 것을 비난만 하기보다는 이야기로 엮어서 말하고 싶다.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입장과, 그래도 그것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Q 윤아와 태연이는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이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깨우쳐간다. 이미애 작가가 생각하는 ‘성장’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알을 깨고 나온다’는 말을 하는데, 그 때 겪는 고통이 성장인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와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무엇인가 돼야 한다.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삐딱하게 굴고 반항도 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손에 박힌 조그만 가시 하나가 무척 크다. 우리 눈에는 그까짓 가시 하나쯤 뽑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그 가시를 못 뽑아서 상처가 곪고 커진다. 나는 성장동화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그 가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껴안지 않고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독자들 중에 한 아이라도 나중에 커서 ‘그 때 그 책을 읽고 힘을 얻었지’하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Q 동화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찾는지 궁금하다. 

“전철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보면 일단 그 옆으로 간다. 이야기를 훔쳐 듣다가 끼어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약간의 한패 의식 같은 것을 같고 있다. 내가 말을 걸면 아이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해도 금방 잘 이야기를 해준다. 그 또래의 아이들을 볼 때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한다. 뭘 입었는지, 머리 모양은 어떤지, 신발에는 때가 얼마나 묻었는지 등을 본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다 보면 소재가 생긴다. 제일 기쁠 때는 독자들이 팬레터에 ‘선생님 우리 반에 와보셨어요?’라고 써 보낼 때다. 그만큼 내가 아이들의 세계를 잘 알고 있다는 칭찬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Q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는데, 원래부터 동화작가의 꿈을 갖고 있었나. 

“어릴 때 ‘백일장 킬러’였다. 백일장에 참가하면 정정당당하게 학교를 벗어나서 경주나 서울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천림이와 별림이’라는 제목의 동화를 쓴 적이 있다. 그 때 막연히 여류동화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인으로 꿈을 바꿨고 문예창작과에서도 시를 전공했는데, 등단은 동시로 했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쓴 동시를 딸에게 읽어주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아동문단에 정식으로 들어가 활동을 하게 됐다. 그런데 동시를 쓸 때는 어릴 때 느꼈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2000년부터 동화를 썼다. 지금도 동시, 동화를 다 쓰지만 동화에 가장 큰 애정을 느낀다.” 

Q 2000년부터면 딸이 초등학생 무렵이었을 텐데, 아이에게 직접 쓴 동화도 읽어줄 수 있었겠다. 

“지금도 너무 고마운 것이, 그 때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하는 말이 ‘엄마, 얼만큼 썼어요? 보여줘요’ 였다. ‘한 줄 밖에 못 썼어’라고 하면 ‘왜 한 줄 밖에 못 썼어, 열 줄이라도 써놓지’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불끈 힘이 솟아서 열심히 쓰곤 했다. 아이의 말이 내가 동화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내 글을 보여줬는데, 어느 날 딸이 내 글을 보더니 ‘초등학생들은 좋아하겠네’라고 하더라.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다음부터는 글을 잘 안 보여줬다. 그런데 이번에 <마법의 옷장>을 연재할 때는 아이가 내 글을 다 읽어줬다. 오랜만에 아이와 작품으로 소통을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Q 동화작가에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더욱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아이를 키워본 작가와 안 키워본 작가의 입장은 다를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딸이 자라면서 아이의 취미생활을 거의 다 같이 공유했다. 아이가 구체관절인형에 빠져있을 때는 같이 인형을 갖고 놀았고, 인형 관련 모임이나 장터에도 따라갔다. 딸과 똑같은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인형을 잘 세울지, 어떻게 하면 인형을 예쁘게 보일지 생각했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 같은 곳에도 딸과 같이 가서 물을 맞으며 뛰었다. 그런 경험이 동화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Q 혹시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동화작가가 있나.

“재클린 윌슨이라는 영국의 동화작가가 있다. <잠옷파티> <공룡도시락> 등을 쓴 작가인데, 다양한 소재로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글을 쓴다. 남편이 그 작가의 글을 보고 내게 ‘비슷한 감성이 있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는 세계동화연구회라는 모임에 잠시 참석했는데, 한 참석자가 내게 ‘언젠가 ’한국의 재클린 윌슨’이라는 제목으로 이미애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하더라. 무척 고맙고 기뻤다.” 

Q 이제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고민과 사연을 담아 동화를 썼는데, 이미애 작가가 성장기에 겪은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 문학청년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고민 등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사이가 좋지 않아 ‘왜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시는 걸까’하는 고민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부모도, 가난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내 행복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에게도 동화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원치 않은 악조건을 갖고 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할 수 있고 열심히 살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겪은 고통이 인생을 영원히 지배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