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늘 어떤 경계지점에 놓여있다. 어린 소녀에서 사춘기 소녀, 혹은 현실과 몽상, 안과 밖.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읽었다. 그 때 왜 이 작품을 손에 쥐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 한창 소담출판사 책을 사랑할 때여서 그냥 멋모르고 샀던 것 같다. 불과 13살.. 조숙한 소녀였던 나는 일찍 사춘기를 겪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은 크게 변해버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생긴 것이다.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나는 이방인류의 소설이 낯설었다. 다 읽고보니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되려 기분이 이상해졌다.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재미를 유도한 것 같지도 않은 소설의 의미가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럼에도 며칠동안 생각에 잠겨 멍하게 지냈었다.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게 된 것도 이방인을 알게 된 후부터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어려운 책을 읽는다고 하면 보통 멋부리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전소설 속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조숙하고 문학적이었던 주인공들은 치기어린 마음에 어려운 책들을 파고들고 이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예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린 나이에는 오히려 다양한 것들을 왕성한 호기심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읽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기가 아니면 도저히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이방인을 지금 읽었더라면 그만큼 감동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은 이제는 이미 여러번 재생이 되어 영화, 책, 실생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이미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흑과 백과 진한 회색과 옅은 회색 사이의 무수한 분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을 알려준 것이 이 책인지도 모른다.

 주인공 뫼르소는 그저 더워할 뿐이다. 한여름의 더위와 땀과 파리들이 귀찮고 짜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아무 느낌이 없고, 레이몽이 여자를 구타해도 아무 감정이 없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고 나서도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가장 극적인 감정적 분출을 보여야할 어머니 장례식에서도 냉담했다는 것을 근거로 사형까지 언도받게 한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도 욕망하는 것이 있고, 유감스럽다고 느끼며, 다소간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방인"처럼 세상과는 단절되어 있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그는 느끼지 못한다. 사형을 앞두고 신부와의 만남도 거절한다. 신부의 말마따나 백이면 백 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다른 사형수들과 비교한다면 그의 태도는 강경하고 다소 의아할 정도이다. 그의 사고방식의 끝은 항상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이고,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살고자 욕망하지 않는 그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회사를 다니고 수영을 하고 애인을 만나고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그에게 모든 것은 그저 심드렁한 일상과 같고, 의지보다는 기본적인 욕구의 해결과 같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것도, 그래서 수영을 즐기는 것도, 애인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것도 그저 욕망의 해결일 뿐 삶에 대한 의지가 그에게는 없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삶은 그저 한순간의 욕망의 충족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의지란 신앙이란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일까. 주인공의 건조한 내면을 따라가면서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비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지만 그에게는 악의도 없고 선의도 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주인공인 그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법정공방도 우습게 느껴졌다. 그는 이미 세상을 초월했는데, 세상은 그를 세상의 기준에서 재단하려고 하니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를 비속한 인간세계에서 "처리"함으로써 평화를 되찾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린 내게, 작가는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도 그저 겉핥기가 아니라, 당사자의 황량한 내면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줬다. 뫼르소를 제 3자의 시각으로 묘사했더라면 절대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그저 감정이 없는 살인자이고, 부모에게 인간적인 애정도 없는 무뢰배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그를 사형시켜 마땅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차라리 불쌍하다고 할까. 그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고, 세상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사형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뭔가.

 이 작품이 내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렵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방인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다는 것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허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지금에야 그를 동정도 하고 하나의 다양성으로 인정도 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가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충격으로 삶에 대한 발랄한 기대가 한풀 꺾였던 것도 사실이니. 며칠간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시해보였고, 또래친구들과는 다른 눈을 갖게 되었다. 가끔 혼자 부유하는 존재가 된 것같은 외로움도 느꼈고, 우월감도 느꼈었다. 나는 또하나의 작은 "이방인"이 되었었다.

 책 속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세상은 왜 이리 시시한지. 공부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어리고 별볼일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못다한 숙제라든지,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것에 있었지 뫼르소의 알쏭달쏭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나는 그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었고, 그런 나를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살아가면서 그런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고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지만 나의 경우 조금 빨랐다고 볼 수 있다. 가끔은 그 때 이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한다. 이방인을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딸, 학생,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다. '그 때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했더라면'하고 가정해보는 일들이. 그만큼 당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이었을진데, 나의 경우 '그 때 이방인을 알지 못했더라면'이라고 가정해본다. 그렇다면 좀 더 밝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을까.(물론 지금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지금 내가 뫼르소에게 배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한가지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는 식의 건조한 사고방식. 아니라고 부정해도 기저심리에 그 전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을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염세주의, 냉소주의라고 할까.

 나에게 초등학생 자식이 있다면 비추할 책이다. 적어도 사춘기에는 좀 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주는 책을 읽히고 싶다. 나야 이런 책들을 비롯 보지 말아야 할 책들(?)도 몰래 몰래 많이 봤지만, 그것이 반드시 도움만 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책. 이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러나 그만큼 이 책의 충격은 크고, 매력적이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고 흔들 것이다. 특히 책의 거의 마지막 페이지, 신부에게 뫼르소가 자신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내뱉는(그가 처음으로 보인 인간적인 감정표현)부분과 신부가 나간 후 그가 얻는 세상에 대한 이해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굉장히 명료하고 단호하며 아름답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홀린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야기 말고 책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암울한 파스텔톤의 책표지와 문구가 인상적이다. 책의 가로와 세로비율이 비슷한 편이다. 가로가 그만큼 다른 책들에 비해 긴 편인데, 이는 텍스트 옆의 여백을 강조한다. 문자로 꽉꽉 들어차있는 책들과는 달리 여백을 여백을 강조한 디자인이라 느슨하고 건조한 주인공의 문체와 어울린다. 찌는 듯이 내리쬐는 태양과 바다.. 나른하게 잠을 자고 수영을 하고 밥을 먹는 이야기의 리듬과 닮았다. 가격도 93년 당시 3500원이니 지금의 1/3인 셈. 그러니 소담을 사랑하지 않지 않을 수 없었다는.. ^^ (그때 당시 다른 책과 비교해도 싼 편이었음)

 책의 표지문구로 끝을 맺고자 한다.

 언제나 다름없는 우울한 일요일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도 끝났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