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시리즈의 중심축을 이루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제목. 각기 전혀 다른 이야기인 4부작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내용은 제목과 조금의 연관성도 없어 보인다. 단지 그 4부작 각각이 동일한 제목의 책 한 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연관성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제1장 기다리는 사람들에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을 찾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존재하지도 않는 책을 찾기 위해 주인공과 독자들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결국 주인공은 이야기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삽입된 "삼월은 붉은 구렁을". 그 중 한 편인 "기다리는 사람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만들어낸 이야기.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향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2장 이즈모 야상곡은 두 여자 편집자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작가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그 편에 담겨 있던 이야기란 나무에 열린 열매처럼 어디선가 생겨나서 따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이야기는,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펼쳐내는 그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정말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이야기 열매처럼 풍성한 이야기들을 그녀는 계속해서 펼치고 있었다.

제3장 무지개와 구름과 새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쓰기 전,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될 배경을 보여준다. 짧은 단편이고, 본 소설의 흐름 속에 속해있는 작품이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놀랄만한 반전을 보여준다.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두 명의 미소녀가 주인공이다.

제4장 회전목마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의 내용 중 일부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들려준다. 사실 이 편은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약간 다르기는 했지만 리세의 이야기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 읽어서 이미 아는 내용이었고, 작품을 쓰고있는 작가의 독백은 글쎄.. 아마도 작가의 실제 모습을 조금쯤은 보여주었다는 점을 빼고는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읽고, 한번 더 반복해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구들 때문에 마지막 한 장을 읽는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역시나...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삼월 시리즈의 또다른 한 편인 "흑과 다의 환상"이 언급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읽으려고 했다고요!!

’잘 된 이야기의 짜릿함!’ 그녀가 4장에서 언급한 이 대목에서 나는 크게 공감했다. 한 바퀴를 빙 둘러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 비어있던 마지막 단 한 칸을 채워넣을 때의 쾌감. 그녀의 이야기는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재의 제한과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을 계속 읽게되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온다 리쿠의 마법에 걸려버린 듯하다. 한 권 한 권 그녀의 책을 읽어가면서 권수가 늘어갈 때마다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 실망하는 부분들은 늘어가는데, 한번 그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벗어날 수가 없다. 다른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막연히 그리워지는 그녀의 세계. 언젠가 이제 더이상은 절대 안 읽어!하는 결심을 할 날도 있겠지만, 얼마간은 계속 그녀의 책을 읽게될 것 같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누군가라면, 한번쯤 그녀의 세계와 만나볼 것을 추천한다. 그녀의 다소 소녀틱한 감성에는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그녀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 빨리 그녀의 다음 책을 주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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