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읽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옛 기억 속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찾아보았다.  책으로 읽고 그리고 만화로도 보았던 키다리 아저씨의 줄거리는 - 아무리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기억나는 건 코끝이 달아나버릴 것 같은 칼바람이 부는 어느 추운 겨울날, 난로 앞에 앉아 뜨거운 군고구마를 양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어렵게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먹었을 때 느끼는 따뜻함과 유사한 감정을 안겨주는 이야기라는 것뿐이었다.  '따뜻하다'는 이미지는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감정이 아닐까.  나 역시 너무나도 좋아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으로 인하여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찾게 되는 이야기를 정말로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건 바로 이 책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후부터가 아닐까싶다.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어릴 적 이 책을 읽은 후 내 곁에도 이런 멋진 아저씨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며칠은 흥분한 상태로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상상, 주인공처럼 조그만 다락방에서 밤새워 글을 쓰고 싶다는 상상 속에서 내 정신은 헤매고 다녔을 것이다.  분명히.  그리고 지금도 그 때와 별반 다름이 없다고 나는 확언할 수 있다.  "귀여운 주디, 내가 키다리 아저씨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는 문장에서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주디처럼 나 역시 그가 그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공이 된 양 들뜨고 행복한 감정에 빠져 책을 품에 안았다. 

 

모든 사람들의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을 이 책 <키다리 아저씨>는 성인이 된 후에 다시 읽어도 지루함이나 촌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도리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행복함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소녀의 마음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고맙고 소중한 책이다.  기억 속에서 구석으로 내몰려있던 어린 시절을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 <키다리 아저씨>를 다시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