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바다의 제국들' 같은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양장본의 서적들은 구입하기 전에도 그렇고, 구입한 후에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도 꽤 적지 않은 망설임을 가지게 한다. 서적의 페이지수가 400페이지를 넘어가면 아무래도 읽기가 조금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중해를 둘러싼 동서양의 대결을 다룬 통사 서적은 우리나라에 사실 거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서적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위안을 삼았었는데, 거기다가 책 표지 디자인이 참 '이 책 사서 소장하고 싶다'라는 느낌이 많이 들은 것도 이 책을 선택한 것에 한몫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그만큼 책 디자인은 블루톤으로 참 잘 뽑아낸 것 같다.

저자인 로저 크롤리는 우리나라에 그리 알려지지는 않은 작가다.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이 바다의 제국들만이 검색이 되고, 책 첫페이지의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이 서적이 그의 저서들 중에서 두번째 서적인 것으로 소개가 된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가르치는 입장도 아니라서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다의 제국들을 읽다보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실제 유적지들을 답사하거나 경험을 쌓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관련 서적들의 양만 봐도 원사료들을 보기 위해서 노력한 것들이 보이고, 또한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화보들은 다른 역사서적에서는 보지 못했던 참신한 자료들도 있어서 눈이 즐겁기도 했다.

※ 역자 이순호는 우리나라에서 꽤 많은 번역서를 출간하였는데, 이 바다의 제국 말고도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살라딘', '살라미스 해전', ''페르시아 전쟁', '비잔티움',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등 상당히 많은 역사서를 번역하였다.

중세가 거의 끝나가고 새로운 시대의 기운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1500년대, 정확히는 1521년 로도스섬 공방전부터 1565년 몰타 공방전과 1571년 파마구스타 공방전을 거쳐 레판토 해전까지 이어지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대결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시오노 나나미의 유럽 중세 역사서(전쟁 3부작과 세 도시 이야기, 르네상스 저작집 시리즈 등)를 바탕으로 관련 지식은 일천하나마 조금 쌓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 그리고 옮긴이가 이 시대에 주목한 이유를 보면, 확실히 이 1500년대는 하나의 시대가 마무리되는 굉장히 흥미로운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혼돈스러운 격전,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한 이슬람게와 기독교계 간의 투쟁이 지중해에서 펼쳐진 것이다...전투 기간만도 100년에 달했다.. 전쟁의 양상도 다양했다. 그런가 하면 그 전쟁은 지중해 유역의 모든 나라와 이익 집단들이 총망라된 전쟁이기도 했다" - 15page 프롤로그

"이 책의 저자 로저 크롤리는 16세기에 일어난 지중해 전쟁을 진정한 의미의 '문명 충돌'로 규정한다. 이슬람계와 기독교계가 세계의 중심 지중해에서 영토, 패권, 종교를 놓고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는 의미에서다...그렇게 해서 지중해는 전 유럽의 시선을 사로잡은 서사적 전쟁의 무대가 되고, 물과 불과 피가 튀는 아비규환의 바다가 되고, 흥미진진한 무용담의 원천이 되었다...그로써 한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 519page, 옮긴이의 말

바다의 제국들은 아래와 같이 크게 세 부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① 1521년 로도스 섬 공방전과 그 이후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중앙에서 펼쳐지는 동서양(정확히는 기독교 세력과 오스만투르크 제국간의)의 소모적인 대결

② 1565년 지중해 중앙의 조그마한 몰타섬에서 벌어진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요한 기사단(또는 병원 기사단, 구호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 몰타 기사단 등으로도 불림)간의 몰타 공방전

③ 마지막으로 1565년 이후 키프로스섬에서 벌어진 오스만투르크제국과 베네치아공화국간의 파마구스타 공방전과 1571년 레판토 해전을 거쳐 1580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에스파냐 왕국의 평화협청 체결까지

그 중에서 아무래도 호기심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1565년 지중해 중앙의 조그마한 섬 몰타 공방전에서 벌어진 몰타 공방전이다. 우리나라 역사 서적중에서 몰타 공방전을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아마 이 서적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 로저 크롤리는 몰타 공방전에 대한 성격을 대략 아래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몰타 섬 공방전의 기획자와 지휘관들은...모두 15세기부터 활동한 인물들이었으므로 이번 공방전은 마치 모든 전쟁과 모든 경험이 길 없는 바다에서 하나의 점으로 모여든 전쟁과도 같았다. 공방전 주역들의 운명은 바다를 종횡으로 누비는 배들의 항적과도 같이 복잡다단했다."

"기독교계의 외벽은 하나둘씩 계속 허물어져갔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로는 베네치아가 유럽의 외벽 역할을 했다....그 다음에 기독교계의 방패 역할을 한 로도스 섬 역시 오스만 제국에 점령되고 말았다...그러다 이제 몰타 섬이 유럽의 외벽이 된 것이다."

조그마한 몰타 섬을 둘러싼 요한 기사단(몰타 기사단)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 술탄(대제 술레이만 1세)간의 자존심을 건 공방전은 처절함과 치열함 그 자체여서 정말 읽는 내내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몰타 공방전 뿐만 아니라

"함선 수만 해도 지중해가 보유한 총 갤리선의 70퍼센트가 넘는 600여 척에 달했고 병사, 노잡이, 선원 등의 인력도 14만 명에 이르렀다."

라고 할 정도로 동서양 세력의 모든 역량과 자존심이 응축된 레판토 해전에 대한 서술은 시오노 나나마의 '전쟁 3부작 - 레판토 해전'을 통해 이미 자세하게 읽었음에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전쟁 이야기를 보다보니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조금 재미있었던 사실은 작가가 가지는 개인적인 판단이나 감정이었든, 아니면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든 유럽 중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베네치아공화국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비판적 시각이었다.

"승리의 결과와도 무관하게 사고방식도 대체로 경박한 베네치아인들은 그것을 핑계 삼아 사육제와 가면무도회를 열었다."

"베네치아는 그동안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비굴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해왔다...베네치아가 바라는 것은 평화로운 바다에서 수지맞는 장사를 하는 것뿐이었다."

"키프로스 섬이나 크레타 섬이 공격받는다 해도 자신들 이익 챙기기에 바쁜 베네치아를 그가 도와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그 서적에서 베네치아인들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자신들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파악한 후에, 공화국이 살길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찾아낸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와는 반대되는 시각을 살펴보니 참 흥미로웠다.

※ 실제로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든지 '주홍빛 베네치아' 등을 통해서 본 시오노 나나미의 베네치아인들에 대한 시각은 대부분 호의적인 눈길이다.

책의 중간중간에 참신하고 조금은 생경한 화보가 꽤 많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고, 시대적 흐름을 구분삼아서 22개 챕터로 나눈것도 독자들이 편의를 고려했을때 좋았다고 보인다. 하지만수많은 전투와 공방전을 다루면서도 전쟁과 관련된 지리적 배경이나 지도 등이 책의 제일 첫 부분에 2페이지로 단순하게 압축된 것은 조금 아쉽다. 차라리 책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것이 독자들을 위해서는 훨씬 좋을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기독교 세력을 대표하는 교황청, 신성로마제국(또는 에스파냐왕국과 합스부르크家), 베네치아공화국과 이슬람 세력을 대표하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약 60년에 걸친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유럽사에 관심있어하는 독자들에게 분명히 큰 가치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전반적으로 유럽측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시각에서도 최대한 균형있게 서술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 역시 분명히 가치가 있다.

Originally written by BlueMiR in http://blog.naver.com/bluemir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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