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2년이면, 내가 한창좋아하는 유럽 중세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유럽 중세의 가장 큰 두가지 특징을 적으라하면 기독교 절대주의와 봉건사회인데, 이미 기독교는 오리엔트의 이슬람교의 확장과 유럽북부의 종교개혁으로 그 절대적인 권위가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이슬람교와의 대립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그 열세를 확고히 각인시켰다. 더불어서 봉건사회는 이미 무너지고 프랑스왕국, 잉글랜드왕국, 신성로마제국, 오스만투르크제국이라는 절대군주하의 왕권국가가 이미 성립되면서,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에 동방의 절대강자였던 오스만투르크제국에게 동지중해 한복판에 떡하니 세력을 가지고 있는 성요한기사단(로도스기사단)은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뱀 소굴' 에 다름아니었다. 성요한기사단은 성지순례자의 구호와 기독교 사상의 수호, 그리고 이교도 축출을 청빈,순결,복종이라는 신념아래 직접 실천하는 귀족출신 기사들의 모임었는데,이들의 활약은 이미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왕국 수호라는 큰 역할을 보여주었지만, 이 시대에는 동지중해에서 쫓겨나 방랑자 신세끝에 로도스섬과 그 일대에서 그들의 신념을 펼치는 신세였다. 과거보다 훨씬 세력도 위축되었고, 지원도 줄어들었으며,  그들과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성전기사단(템플기사단)은 이미 소멸되어버렸음에도  성요한기사단의 구성원들을 끝없이 떠받치는 것은 바로 순수한 신념과 열정,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로도스섬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로도스섬 공방전의 역사적의의는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비교해보았을때 어찌보면 크지 않다. 이미 대포와 총이 등장하면서 중세의 전투방식은 변화해버려서 중세와 근대의 대결도 아니요, 기독교 세력은 이미 오리엔트에서 축출된 마당에 십자군세력과 이슬람세력의 최후의 대결도 아니요

※ 후에 몰타 공방전이 벌어지는 점을 유념하자.

그렇다고 지중해에서 베네치아공화국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시점에, 기독교세력의 최후의 항전도 아니었다. 굳이 역사적의의를 꼽아보자면, 동지중해에서 십자군 세력의 축출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동지중해의 패권 완전 확립정도를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더군다나, 로도스섬을 수호하려는 성요한기사단의 기사들은 이미 '몰락하는 계급', '소멸이 예정된 사라져갈 존재' 였다. 기사라는 계급은 유럽 중세의 봉건주의 사회에서 빼놓을수 없는 계급이었고, 유럽 중세의 수많은 전쟁과 다툼, 그리고 1차 십자군 전쟁에 있어서도 그 주역이었다. 하지만 찬란한 은빛갑주에 둘러싸여 말을 타고 칼과 창을 휘두르는 기사라는 존재는 봉건사회의 붕괴와 대포/총이라는 근대 무기의 등장에 따라 그 존재감을 거의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기사들이 바로 이 로도스섬의 공방전의 한축이었는데, 서유럽 기독교세력의 지원은 기대할수도 없고, 상대는 그 기세가 절정에 달한 거대한 제국, 그 제국이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양앞에서 로도스섬공방전의 결과는 이미 시작전부터 결정된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술탄의 관대한 항복조건도 거절하면서까지 6개월이상 버텨낸 이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신념과 열정,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몰락하는 계급의 항전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고, 그 의의가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정도로 지켜내야할 소중한 신념을 지키려는 마음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결국에는 거대한 흐름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처절하게 아름답다.

 

"몰락하는 계급의 마지막 생존자! 우리는 결국 이런 불은을 떠안은 이들이야...

몰락하는 계급은 언제나 새로 대두되는 계급과 전쟁을 치르고서야 완전히 사라지는 것인가."

- 140페이지, 오르시니와 안토니오의 대화중에서.

 

 

 

 

Originally written by BlueMiR in http://blog.naver.com/bluemir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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