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걸으멍’
책 <제주 걷기 여행>의 부제다.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라는 제주 방언이다.
걷더라도 전투적으로 앞다퉈 걷는 것이 아니다.
쉬는 듯 걷는 듯 자연을 느끼며 걷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런 걷기를 강조한다.

 

사실 이 책을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음식맛이 기가 막힌 맛집이나, 풍경이 빼어난 곳은 아껴두고 싶다.
특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이 꼬여 지금의 모양새를 잃지 않을까하는 기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
괜스레 유명해져 저자 서명숙씨가 초심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저자가 소개한 ‘올레’가 ‘유명 관광지’가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거리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의미한다.
제주가 고향인 저자는 올레를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는 물론이거니와 자전거도 다니기 쉽지 않은 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신작로가 생겨 명성을 잃은 옛길을 찾고, 끊어진 길은 다시 이어서 길을 만든다.

 

저자는 올레로 걷기를 권유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느림의 행복을 깨달았다는 저자는 올레를 걸으면서 삶의 속도를 늦추라 주문한다.
빠르디빠른 교통수단이나 컴퓨터의 출현으로 광속 같은 현대인의 생활을 늦추라 한다.
사실 제주는 렌터카로 일주하면 며칠이면 족하다. 
홍콩이나 미국 라스베거스와 같은 번쩍거리는 관광지에 익숙한 사람에게 제주는 심심한 섬이다.
저자는 심심한 섬에서 더 심심한 시간을 가지라 한다.
자동차로 ‘관광’을 하지 말고 두 발로 ‘여행’을 하라는 것이다.

 

고향인 제주보다 타향인 서울 생활을 더 오래 한 저자는 일 중독자였다.
느리게 살 수 없는 치열한 기자생활을 오래 했다.
그런 그가 제주 올레를 만들면서 느리게 걷는 일을 주창하는 이유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어떻게 시작했고 누구의 도움을 받았으며, 올레를 걸어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나는 제주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제주는 세계 어느 섬보다 아름답고 에로틱하다.
바다와 산이 있고 전설과 역사가 있다.
제주가 미국령이었다면 아마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었을 터다.
처녀 같은 섬, 거친 천연석 같은 섬을 갈고 닦아 ‘보석’을 만들려는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지난여름, 매년 그렇듯이 나는 제주를 찾았다.
관광지에 눈길도 주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곳만 찾았다.
아무도 모르는 해수욕장을 혼자 전세낸 듯 향유했고, 자동차 소리 들리지 않는 숲 속에서 책을 읽는 여유를 부렸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번에는 시계도 없이 사진기 한 대, 노트 한 권, 책 몇 권만 들고 제주의 작은 마을 골목을 거닐 요량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