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 가면 막내는커녕 노땅 취급받기 딱 좋고
누가 나이라도 물어볼라치면 만 나이로 얘기하게 되고.

23살에는 결혼하겠다던 학창시절의 철없던 결심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
옛말 하나도 틀린 거 없이 나완 반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거나 늦게 하겠다던 애들 중에서는
학교 졸업하자마자 번갯불에 콩 볶듯 결혼하기도 했었지.
지금 내 나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벌써 초등학교 학부형인 친구도 있다.

그나마 싱글로 남아있던 친구마저 작년 겨울에 결혼하고
이제 정말 미혼은 나 혼자만 남았구나!
이제는 왜 결혼 안 하느냐는 얘기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신세가 되었다.

내 마음가짐은 아직 학창시절 꿈많던 여학생 시절 그대로인데
내 주변과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가서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 내게 돌직구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들! 당신들도 곧 나처럼 돼!"

 

 

1장부터 이 아줌마 심상찮다.
아줌마가 되기 전 누구나 아가씨였던 시절이 있었듯 그녀도 어쩜 나와 같은 생각인지.

지하철에서 자리 차지하겠다고 가방 날리는 아줌마.
세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아줌마.
목소리는 또 왜 이리 크고 웃음소리는 왜 저리 큰지.
창피함이라고는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아줌마.

난 죽어도 저런 아줌마는 되지 않겠다던 그녀.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어느새 그러한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사실.
서글프면서도 곧 내게도 닥쳐올 미래라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살아가라던 그녀.
하지만 나도 벌써 '조금 더 멋지게 살아볼걸' 하고 한탄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결혼을 전제로 사랑하지 말라거나,
누구를 택하건 함께 행복해질 상대를 고르라는 것.
진심을 다해 많이 싸우고 많이 사랑하라는 것.
결혼에 대한 환상은 깨고 내가 먼저 사랑과 희생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상대와의 결혼 이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장애물이 떠오른다면, 다시 한 번 꼭 고민하라는 촌철살인.

 

 

남편은 남의 편, 김치는 홈쇼핑으로 사서 먹으라는 유쾌한 돌직구를 포함
결혼생활과 육아를 이미 경험한 선배로서 가감 없이 솔직하게 모든 걸 까발려줘서
결혼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한눈 안 파는 남편이 없듯이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주는 그녀의 대담함까지.

아이는 같이 만들었는데 정작 육아에 대한 부분은 여자가 전담하게 되고
내 시간 하나도 없이 쪼개서 아이 뒷바라지와 남편 챙기기에 여념 없이 보냈더니
돌아오는 것은 개무시, 변해버린 외모에 대한 지적이라니.

 

 

시월드는 결혼생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
내 귀한 아들 채간 며느리는 곱게 보일 리 없고, 넘치는 잔소리의 향연.

닭살스러운 드라마라도 찍어야 시월드를 길들일 수 있다고.

 

 

씁쓸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상황들에 구구절절이 공감할 수 있었던 모든 장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주변에서 들었던 얘기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무한 공감하게 만들었던 수다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봐야 할 정도로 천불 나는 순간들이 있음에도
어려울수록 강해지고, 힘든 시절을 이겨낼수록 뿌듯함도 커지는 것처럼
따뜻한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나는 것.

그게 바로 결혼생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