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TV에서나 접할 줄만 알았던, 나와는 무관할 것만 같았던 병.

그러나 파킨슨병은 나와 이제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
작년 여름 이후 나와 가까운 사람이 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무지해서 파킨슨병이 알츠하이머나 루게릭과 같은 병인 줄 알고 많이 당황했었는데
불치병이긴 해도 알츠하이머나 루게릭만큼 심각한 병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서울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한 데다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이기도 한 저자 역시 처음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왜 하필 나야'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의사니까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현실을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병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보다
너무 잘 알고 있어 더 끔찍했고, 미래가 빤히 그려져서 더욱 우울했다고 한다.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의 손상으로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 퇴행성 질환.

보통 65세 이후에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이며, 우울증과 치매,
편집증이라는 증상까지 동반하는 데다 치료법도 없는 희귀성 질환.

발병하고 15~17년 정도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파킨슨병.

마흔세 살.
병원을 개업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2001년에 진단을 받았던 그녀.
길게 잡아야 60세 전·후면 인생이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 시련이 많았던 것 같다.

대학교 예비 소집에 갔던 언니는 사고로 죽고, 곧이어 할머니까지 돌아가셨다.
임신 중에 환자를 살리려다 첫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여느 며느리처럼 고부간의 갈등도 겪었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해야 했다.

남들에게는 건강과 휴식이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늘 너무 바빴고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몸을 노예 부리듯 혹사했다고 한다.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잠까지 줄이면서 무리한 탓에
글씨를 쓰면 자꾸 작아지고, 저녁이면 오른쪽 다리를 끌고, 불안 증상 등의
증상을 느꼈지만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여겼다.

좀 쉬고 운동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운동을 시작하지도, 쉬지도 않고 몸을 혹사했고 결국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고,
약효 지속시간이 세 시간 밖에 안 돼서 약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하룻밤에도 옷을 세 번 정도 갈아입어야 하고,
약 기운이 떨어지면 심박동수가 120을 넘고,
돌아눕기도 힘들고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도 발로 차 내기도 힘들고,
마치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 움직여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행복하다.

사지 마비가 아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됐고
루게릭병이었으면 5년밖에 살지 못했을 텐데 그래도 파킨슨병이라 다행이라 생각했고,
병이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고,
대표적인 증상인 치매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병하지 않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마음가짐 하나로 삶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요즘 짜증이 늘어난 데다 불평불만이 심해졌다.
그냥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인데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가진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참 쉬운 일인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쉽게 잊고는 한다.
나도 매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며 반성하지만 돌아서면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가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선배처럼, 엄마처럼 조언해 주는 글귀들이 참 좋았는데
실제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어
마치 우리 엄마가 보내준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읽었던 책이나 영화들이 간략하게 언급되거나
명언들이 실려있는 부분들도 참 좋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힐링이 필요하고 대세인 때 어울리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