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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고구려는 수많은 고분벽화 속에 자신들이 추구하였던 다채로운 천공의 세계를 한껏 펼쳤다. 천공의 별자리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장구를 치고 사현금을 뜯던 선인들이 하늘을 노닐 수 있었다. 이 담대한 상상력 위로, 해와 달과 별이 수놓인 천공에 봉황을 타고 용을 타고 때로는 깃발을 잡고 날던 비선의 초월성, 천장 공간을 가득히 채운 일월성수의 별자리 세계에 투영시켰던 그 호방한 기상을 우리가 어찌 상상이나 하였으랴! 까맣게 잊어버렸던 옛하늘의 판타지만은 아닐 터이다. 대칭의 천문 미학과 공존의 천공 미학이 수놓였던 그러한 하늘을 지금 우리가 다시 한 번 추구해보면 어떨까. (171)

이러한 지은이의 바램과 노력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책은 잊어버렷던 우리 옛선인들의 하늘에 대한 사랑노래를 차근차근 따라가며 만나게 하여준다. 바로 앞에 지은이가 출간한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의 '고구려' 상세편에 해당할 수도 있는 이 책,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는 여러모로 기존의 책들과 차별성을 가진다. 그리고 그 차별성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몫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할 수 있다.

넘쳐나는 벽화 유물 사진에 더하여 거의 모든 쪽에 등장하는 상세한 벽화의 세부도와 모사도 그림까지, 그리고 천문도와 벽화와 관련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을 우리는 이 책 한 권만으로도 거의 만나볼 수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로만 들어서는 결코 깨닫지 못할 벽화의 아름다움들이 선명한 컬러사진과 상세한 그림이 더해져 마치 직접 가서 그 벽화들을 만나보며 설명을 듣는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그 수고로움의 비용이 두께에 비하여 높은 책의 가격에 반영되었으리라. 하지만 책을 찬찬히 읽어나가는 동안 드는 생각은 오히려 두 배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좀 더 큰 도판으로 책 속의 사진이나 그림들을 크게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하여 이 책은 굳이 고구려 하늘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별자리와 별의 운행에 관한 기본 상식을 쌓으려는 이들에게도충분히 유용한 교재가 될 수 있다. "황도 12궁의 위치와 원리"(20~21), "적도 28수의 위치와 원리"(26~28), 에서 만나는 여섯쪽의 그림과 상세한 설명만으로도 지구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별자리와 그 이동길에 대한 기본 상식을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에 더하여 우리 하늘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그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어찌 추천하여 권하지 않으랴. 하늘과 우리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 옛날 선조들이 바라본 하늘과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할지니 그 길로 따라 나서자꾸나.

Ⅱ.

이 책을 읽으며 만나는 놀라운 이야기 몇 가지만으로도 고구려 하늘, 고구려 천문학의 독자성과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이야기들을 전해본다.

먼저 고구려 벽화고분이 많음에 먼저 놀란다. 현재 발견된 벽화고분들의 숫자가 107기에 이르고 있다니 대단한 숫자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고분속의 벽화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놀라움맑은 고딕" color="#000080">'사신도'에 더하여 '황룡'까지 중앙에 위치한 고구려만의 '오신도'의 장엄함,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구분하여 만나볼 정도로 크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수놓아진 <덕흥리 벽화 속의 하늘 세계>(56~57)는 정말 영상으로 함께 공유하고 싶은 그런 별자리 유적이다.

<덕흥리 벽화 속의 하늘 세계>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유적들이 지금 북한에 있어 지은이도 온전한 조사를 다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97) 그리고 아직도 묻혀 있을 유적들이 있을 것이니 이 또한 크낙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놀라움은 계속된다.

덕흥리의 북두칠성 별자리에서 실제 관측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점은 보성(輔星)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북두칠성의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무곡성옆에 짧은 선으로 연결한 조그만 별이 보인다. 북두칠성이야 유명하지만 보성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보성은 아주 자세히 보아야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61)

북두칠성 옆에 작은 별이 또 있다는 이야기 자체를 처음 만난 내게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고구려 최고의 미인 대안리 1호분의 베 짜는 아가씨'(70)는 '단발머리를 한 모습이 너무나 현대적 미인상?카라까지 칠한 듯한 꾸밈새가 보통이 아니다. 고구려 벽화의 등장 인물 중에서 아마도 최고 미인으로 꼽힐 만하다.'(70) 1500년 전의 벽화에 그려진 모습이 이러할진대 당시 실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또 아름다웠으랴.

그리고 '고구려 평양의 하늘을 담은 기토라 금박 전천천문도'(138~139)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긴 하였지만 다시 만나도 놀랍고 새로운 별자리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일본에서 발견된 700년경의 천문도가 위도 39도의 고구려의 밤하늘을 묘사한 천문도라는 사실에 어찌 놀라지 않으랴. - 이 이야기는 최근 [바람의 화원]으로 필명을 드날리고 있는 이정명 작가가 10년전 1999년에 [천년후에 1,2]라는 아름다운 사랑 소설로 담아낸 바가 있다.-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가 빚어내는 사랑은 많은 사람들을 가슴 저미게 하였으리라.

또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 태조 4년(1395)-의 제작자인 양촌 권근의 큰할아버지가 경기도 파주 석곡리 고려시대의 고분벽화의 주인인 권준(1281~1352)이라는 사실도 전문가 집안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전승을 알게 해준 놀라운 사실이다.

시기별로도 나누어지는 고구려 벽화의 변천과정과 고분벽화의 아름다움들은 이 책을 통하여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란다. 앞서도 이야기드렸지만 머리속에서 상상하던 벽화들이 이처럼 아름답고 놀라운 것임은 만나보지 않고는 결코 깨달을 수 없던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만나는 놀라움이 또 있으니 무려 58쪽에 이르는 상세하고 체계적인 부록들이다. "고구려 별자리 벽화무덤 목록"에서 '분류와 구성', '분포', '고려시대 벽화', '동아시아 천문도의 역사', '사신도와 천문도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 책 한 권이면 더 넓고 깊은 옛하늘의 세계로 우리는 아무런 어려움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마지막의 "동서양 대조 천문도"는 두고두고 만나볼 천상의 별자리 지도이다. 게다가 별첨부록으로 "고구려 오신도와 동서양 별자리"까지 제공되니 어찌 이 책을 권하지 않으랴.

지상과 천상의 풍류를 꿈꾸고 노래하던 옛고구려 선조들의 하늘 이야기를 제대로 다듣지 않아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 뒤적이는 책장마다에 묻어나는 벽화 속 그림들이 내게 달려와 그 시절의 하늘로 함께 돌아가보자고 손짓하고 있으니…. 오늘밤도 나는 저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늘은 천문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유가 한껏 펼쳐지는 마당이기도 하다. 인간의 근원성을 궁구하고, 존재의 보편성을 수놓고, 세계의 통합질서를 모색하는 일에서 하늘을 배제하고 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더구나 현대사회는 상상력의 시대이기도 하다. 하늘이 직접 무엇을 가져다주는 대상은 아니나 우리 사유의 궁극 경계에 자리하는 존재이기에 과학의 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하늘이 가지는 원천성은 무한하다. 역사학이 자기 학문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면 역사 속에 투영된 하늘의 역사와 그 사상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171)

2009.1.18.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버팅깁니다.

들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