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나의 십대시절은 홍콩 느와르 영화의 시대였다. 그 당시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등이 나오는 수많은 느와르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살인과 배신, 피로 얼룩진 암흑가의 비정함보다는 이쑤시개를 항상 입에 물고 나오는 주윤발에 더 열광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기 전, 나에게 느와르는 홍콩 액션영화였다면 일고 난 후, 나에게 느와르는 암울했던 시대, 칠흑같이 어두운 삶의 비정함에 몸부림친 청춘의 비망록이 되었다.

첫 번째, 비망록은 ‘그들은 말을 쏘았다’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로버트와 배우를 꿈꾸는 단역배우 글로리아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참가하게 된 댄스마라톤 대회는 미국의 경제 대공황시대, 수주일간 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춤을 추워야만 하고 돈을 위해서는 거짓 결혼, 지옥 같은 더비 경기, 지명수배범을 이용한 홍보까지 서슴없이 이용하는 상황 속에서 글로리아의 삶에 대한 염세주의는 극에 달하게 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버트, 또한 지쳐가면서 불행을 끝내고자 하는 그녀를 위해 어린 시절 부모가 말을 위해 총을 쏘았듯이 그녀를 향해 총을 쏜다.

그로인해 일급살인죄로 기소된 로버트가 재판정에서 판결이 진행되는 동안 사건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했던 젊은이들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이 만들어낸 비극을 꾸밈없이 풀어내고 있다.

두 번째, 비망록 ‘스카페이스’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다간 토니 구아리노의 이야기이다. 십대 후반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악명 높은 갱단 보스 앨 스핑골라를 살해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로인해 갱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추진력과 냉정함으로 갱단의 핵심인물이 되어가지만 우연히 비비안과 함께 같던 클럽에서 플래너건 형사와의 싸움으로 결국엔 쫓기듯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그가 배운 것은 온갖 살인의 기술과 사회에 해로움을 줄 것들뿐이었다. 제대 후 비비안을 찾아간 그는 또 배신한 비비안과 남자를 살해하게 되고, 전사자가 되어버린 현실과 흉터로 인해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로 인해 토니 구아리노라는 이름을 버리고 토니 카몬테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조니 로보 조직에서 빠른 두뇌회전과 대담함으로 반대파 체리 호프만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던 중 조직을 물려받게 되면서 암흑가 최강의 세력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가차 없는 조직간 피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대편 조직에 납치되어 죽을 고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지만 연인 제인과의 사이에 불신이 자리 잡게 된다. 또한 오해로 인해 여동생 로지의 남편이며 충복인 마이크 리날도를 죽임으로써 법정에서 다시 가족을 상봉하게 되지만 그를 바라보는 경멸에 찬 시선뿐이었다. 돈과 권력의 힘을 빌려 무죄로 석방되지만 복수를 위해 그의 주변을 맴도는 로지로 인해 제인의 오해는 깊어지고 결국 토니는 제인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형의 총탄에 쓰러지고 만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한, 권총을 불발되지 않는 법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은 살인이 일상인 유혈이 난무하는 갱단의 보스로 냉혈한이었든 토니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넘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경제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시대 부와 권력을 쫓아 비열하고 잔혹한 범죄자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였더라고 가슴 밑바닥에는 인간본연의 선한 모습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본주의 모순인 황금만능주의로 인해 인간 본래의 선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비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갖게 될 수도 있음을 범죄소설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