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뭔가 잘못을 하면 그에 대한 반성도 따르지만 그걸 조금 더 부드럽게 넘어가기 위한 지출도 각오해야 한다. 오직 아내를 향한, 단 한사람을 위한. 작년에, 10년만에 책에 미치는 바람에, 그것도 책 읽는 것 이상으로 책 사는것에 미치는 바람에 책 사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구입한 데 대한 무마용 출혈도 감수해야 했다. 다행히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 불만은 없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나의 5월 28일 일기부터 살펴보자

 

2008년 5월 28일.

 

아내의 소박한(?) 꿈.

 

나는 과외선생이다.

과외를 하다보면 학생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업을 못 할 때가 있다.

그러면 한 타임을 아주 무료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흐뭇하게 보냈다.

   - 나는 여유롭고 기분 좋으면서 정적일 때 '흐뭇'하다는 표현을 쓴다.

 

1시부터 4시까지 연속으로 두 타임을 하는 수업이 있는데,수업하는 중간에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3km정도 걸어서 마사지샵에 왔다고.

 - 요즘 우리는 식이요법과 워킹으로 다이어트를 한다. 아내는 더 늘씬한 몸매를 위해서, 나는 비만탈출을 위해서.

우리가 마사지샾에 다닐 여유를 부릴 형편은 안 되다. 결혼전에 신부 마사지 패키지를  신청했는데,

좋아하는 고양이만큼이나 게으른 아내는 결혼하기 전까지 그걸 다 쓰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은 호사를 부리고 있다.

지난주에 마사지샾 남은 쿠폰을 사용한다고 다녀오더니

아내는 마사지 받을 때면 자신이 마치 돈 많은 집 사모님이나 된 듯 하다며, 좋아진 피부 예찬에 싱글벙글이다.

그러면서 담당하는 실장이 피부가 많이 상했다면서 꾸준히 관리 받을 것을 권한다고.

아내는 자기 유리한데로 귀를 얇게 만들어서 솔깃해져서 꾸준한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형편에. 세상에나.

 

4시부터 5시 30분까지 하는 수업이 차질이 생겼다.

다음 수업이 6시부터인데 2시간이 여유가 생겼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마사지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걸어오고 있단다.

중간에 픽업을 해서 집으로 올까 하다가 중간쯤에 위친한 서점에서 보자고 했다.

서점에서 아내의 관심사는 2가지다. 미술과 고양이.

디시인사이드 고양이 갤러리에서 책을 냈는데 내 앞에 내민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대령하라는 이야기다.

미술은 '김점선 스타일'1,2 라는 두권의 책을 보여주었다.

목록에 추가하라는 이야기다.

서점에서는 책 구경만 하고 구입은 할인이 되는 인터넷으로 하는 이 바퀴벌레 같은 얌체부부는 배가 고파서 지하 서점을 나왔다.

2주넘게 지독한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지난 일요일부터 세상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난 2주동안 우리 부부는 2년전에 아내가 대성공을 거둔 덴마크식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하루 두끼만 먹는데 그 형편없는 콘텐츠라는게,,, 자몽이 필수로 들어가고 오이와 고구마, 토마토

키위, 닭가슴살 등등이다.  빠른 걸음과 줄넘기를 병행하면서. 항상 지나친 포만감에 젖어 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복감이 지나친 포만감보다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2주의 결실로 아내는 4kg, 나는 4,5kg 감량을 하고 있다. 다이어트와 식이요법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지난 일요일은 디카동호회 사람들과 수로요(내가 적을 두고 있는 도자기 만드는 곳)에서 삼겹살을 먹었고, 월요일은 밤 늦게 장보러 갔다가 아내는 생크림케익, 나는 족발을 메뉴에 올렸다.

오늘은 분식이다. 나는 낙지덮밥, 아내는 모밀.

밥 먹으면서 돈 많이 벌면 아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피아노 사 준다고 말했다. 큰 소원이나 들어주는 것 처럼 아주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내는 몇 년 전부터 피아노를 갖고 싶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이었다. 근데 조금 눈이 높아진건지 디지털은 싫단다.

그냥 피아노가 갖고 싶단다. 디지털보다 2-3배는 더 비싸다. 새거는 욕심없고 중고 적당한거 없나 알아보던데 중고가격도 언감생심이다.

근데 그 비싼 피아노 이야기를 내가 꺼낸 이유가 있다.

낮에 수업하는 학생집에 피아노가 있다. 그래서 오늘 수업하면서 피아노에 대해 이래저래 질문을 했다. 안 친지 제법 되었다면서, 자리만 차지하는 피아노를 온 식구들이 처분하기를 원한다고.

싸게라도 팔 곳이 있으면 싸게 넘겨 버리라고. 내가 혹시나해서 물어봤는데 세상에 이런일이.^^

학생이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과외선생님이 피아노 관심있어 하신다고 하니 그냥 헐값에 넘길 분위기다. 오 브라보.

그래서 아내에게 큰 소리 쳤다. 돈 많이 벌면 당신 갖고 싶어하는 피아노 새거는 아니지만 중고 괜찮은거 사준다고.

 - 여기까지는 흐뭇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피아노도 갖고 싶지만 또 하고 싶은게 있단다. 피부관리를 꾸준히 받고 싶단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돈 많은 사모님이 되어보고 싶단다. 만약 둘 중에 고르라면 피부관리를 받고 싶단다.

 

 

아~~!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그 다음엔 아내의 블로그를 살펴보자.

 

(아내 블로그 캡쳐)

 

2008년 6월 28일.

 

 

 

 

이 정도는 애교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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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의 다른 책 사진 하나 더.

 

 

 

 

바닥에 널부러진 책들은 비상금 꽁쳐서 몰래 몰래 산 책들 2탄이다. 공부방이 원룸형식이고 부엌이 분리되어 있는데 싱크대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밥 해 먹을 일이 없으니. 몰래 산 책들이 배송되는 족족 싱크대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작년 여름 휴가용으로 구입한 만화책까지 합치면 족히 400권 이상 될거다. 들키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언젠가 들킬거야',  나중에는 '빨리 들컸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매는 빨리 맞는게 속 편하잖아. 불안한 마음 가지고 사는 것 보다. 아내가 공부방을 방문해서 일전에 수로요에서 받은 큰 접시를 싱크대에 넣어두었는데 그 접시를 찾기 위해 싱크대를 여는 순간 책들이 빼곡. 혹시나 해서 다른 싱크대를 여니 거기도 책이 빼곡. 혹시나 해서 싱크대 상단을 여니 거기도 마찬가지. 그 때는 '올것이 왔구나', '아~~! 어떻하지?' 등등 순간적으로 사람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과 상상을 했다. 근데 이미 어느 정도 면역이 된 아내는 오히려 차분했다. 사실 그게 더 무서웠다. 아주 차분하게, 아주 차분하게

 아내 曰 "전에 약속한 거 기억하지? 그거 못 지키면 저거 다 불질러버린다"

아주 평화롭고 차분하게 말 했던걸로 기억한다.

 

 

그 약속은 해가 가기 전에 피아노를 선물하는 것이었고 능력부족이었지만 운이 좋아 지킬 수 있었다. 5월 28일 일기에 등장하는 과외제자를 통해 부모님께 부탁드렸고 난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내 책들은 무사했다. 우리 시대 중산층정도면, 중산층이 아니더라도 교육열이 조금 있는 집이면 집에 피아노 있는 집이 제법 있었다. 나도 아내도 자라면서 피아노를 가지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피아노가 배달되고 조율이 끝나고 의자에 앉아서 건반을 만지면서 아내는

"어릴 때 정말 피아노 가지고 싶었는데, 친구집에 놀러가면 피아노 한 참 치다가 오곤 했느데, 울 아버지가 못 해 주신 걸 신랑이 해 줬네. 너무 고마워"

 

 

 

 

 우리집 거실 한 켠에 자리한 피아노.

 

 

 

 

 

온통 고양이 잔치다.

 

 

 

 

조금 가까이서 찍은 사진.

 

 

 

 

아내가 만든 북커버도 있고

 

 

 

아내가  만든 토우도 보이고 아내가 만든 차 주전자도 보이고(왼쪽)

 

 

 

 

작년 겨울에 산 차茶

 

 

 

 

친구 박효제군이 일본 출장 다녀오면서 선물한 마네키 네꼬.

 

 

 

 

작년 진주 남강유등축제 갔다가 산 고양이 목각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