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이라는 책을 보면서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 박정자씨의 글에 매료가 되어

작가의 책소개를 참고하여 <빈센트의 구두>를 사게 되었다.

 

<빈센트의 구두> 바로 고호의 그림이 아닌가?

그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좋아하게 되기 쉬운 그림이기도 하다.

또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던져져 있는 낡은 구두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역시 이 책을 통해   박정자씨의 문장력에 또한번 매료되었으며,

그 분의 미학적 철학적 심미감에 도움을 받아 즐거운

미술과 철학 그리고 영화에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책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푸코의 <시녀들>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은 에스쿠리알 궁의 한 살롱에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와 옆에 서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 및 시녀, 시종, 궁인, 난쟁이들을 그린 그림이다.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이므로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다하지 않다. 화가, 모델, 관객이 회화의 3대 기능이라면 이 그림은 이 세 요소가 각기 두겹으로 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이다.
화가가 공주를 포함해 전경에는 여덟 명의 인물과 개 한 마리가 있고, 후경에는 문틀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좀 작게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나 문틀 안의 사람도 역시 같은 장면 속의 인물이므로 이 그림의 등장인물은 모두 아홉 명이다. 그런데 후면 벽의 액자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있다. 이들까지 합치면 그림 속에는 총 열한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아홉 명의 인물이 실재인 반면 액자 속의 두 사람은 그저 이미지일 뿐이다. 그 자체가 2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인데, 이 희미한 이미지 안에 벨라스케스 그림의 수수께끼가 있다. 푸코의 방대한 철학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액자가 그림인지 거울인지 얼핏 헷갈리지만, 같은 벽 위쪽에 걸린 커다란 두 개의 그림이 깊은 어둠에 잠겨 희미한 빛의 얼룩만 보이는데 비해 작은 액자 속에서는 두 사람의 형체가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이 거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혼약>에서 볼 수 있듯이 네델란드의 회화 기법에서 거울은 반복의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면 그림 안에 그려진 것들이 해체 되거나 재구성되어 거울 속에 다시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거울은 1 차적 그림의 그 무엇도 반복하고 있지 않고, 장면에 전혀 보이지 않는 두 인물을 보여주고 있다. 거울 안의 실루엣은 그림 안의 모든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다.

그림 속의 장면이 앞으로 더 확대되었다면 아마도 뒷모습이 보였을 터이지만, 화가가 그림의 장면을 거기에서 정지시켰으므로 그림의 밖에 있게 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그림 속의 화가가 화폭 속에 그리고 있는 모델, 즉 필립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화가, 두 그룹의 모델이 있다. 만일 벨라스케스가 필립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화가는 벨라스케스이고, 모델은 왕과 왕비이며, 관객은 그 초상화를 보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시녀들>에는 바로 그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과 현장에 구경나온 공주와 시녀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화가와 그림 밖의 화가가 분리되어 있고, 그림 속 화가의 모델인 왕 부부와 그림 밖 화가의 모델인 아홉 명의 인물들이 있다.
그렇다면 관객은 어디에 있는가? 거울 옆에 문 하나 열려 있고, 그 문틀 안에 키 큰 남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한 손으로 문설주를 잡고, 두 발은 각기 다른 계단 위에 놓여져 있으며, 한쪽 무릎은 구부러져 있다. 거울처럼 이 문틀도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 거울 속의 인물들이 한갓 이미지인데 비해 이 남자는 장면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장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지 않고 원근법의 소실점이 위치한 후경에 작게 그려져 있다. 그는 장면의 참여자가 아니라 방관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장의 관객이다. 그런데 그림 <시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또한 관객이다. 화가나 모델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그림의 안과 밖으로 각기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시녀들> 속에 감추어진 에피스테메 - 푸코론
벨라스케스는 이 차원적 평면위에 도저히 함께 넣을 수 없는 회화의 세 가지 기능을 야심차게 한 화면 속에 다 넣었다. 재현의 생산자(화가), 재현의 대상(모델), 관객의 재현이라는 3대 요소가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데, <시녀들>은 그림 그리는 장면을 또 그림으로 그린 그림라는 뜻의 '재현의 재현'이다. 이 그림에서 재현된 것은 재현의 기능이고, 이 그림의 진짜 주제는 '재현'이므로 그림의 제목은 '회화의 기원' 쯤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중략>
현실의 차원에서 왕과 왕비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화가 또는 관객의 자리이기도 하다. 거울 안에는 관객과 벨라스케스의 얼굴도 비쳐져야 마땅하다. 벨라스케스는 이 장면을 조작한 사람이고, 관객은 앞에서 장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중략>
<시녀들>을 그린 벨라스케스가 그림 속의 화가란재현된 이미지로 그림 안에 나타나지만 실제의 벨라스케스는 그 안에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동물의 일람표 안에서 '인간'이라는 표상으로 자리 잡을 수는 있어도 그 일람표를 작성한 재현의 동작주로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마치 아내와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전주의적 사유 안에서 그를 위해 재현이 존재는 그 사람, 재현 안에서 이미지 혹은 거울 속의 영상으로만 자신을 재현하는 그 사람, 그림 안의 복잡하게 얽힌 끈들을 얽어매 정리하는 그 사람은 그림 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푸코가 말했을 때 이것은 절묘하게 일람표를 작성하는 주체적 인간의 부재, 더나나가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에서의 인간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내용출처 : <빈센트의 구두> 박정자 - 참조
에피스테메 Episteme  지식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72&docId=1530523&mobile&categoryId=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