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라는 다소 무미건조한 원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한국에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제목은 독자층의 흥미를 끌어낼 뿐만 아니라, 이 책의 핵심 논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인류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길고 길었던 ‘계급사회’에 종말을 고했지만, 계급이 종말하고 유토피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에 불과했다. 계급이 떠나간 자리는 계층이 대신하게 되었다. 계급사회의 최하층이었던 노예계급의 비참함은 현대에 들어서 빈곤층의 비참함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인류 역사의 내재적 발전으로 인해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사회적 진보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문제는 존재한다.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빈곤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고, 또 애쓰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루비 페인도 그 중 한명이다. 그는 특별히 미국 내의 빈곤층 문제에 힘쓰고 있으며, 아하!프로세스(aha!Process)를 설립하여 빈곤층 아이들의 삶과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열정의 사람이다. 그녀는 빈곤의 문제를 경제 계층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이 책에는 빈곤에 대한 그녀의 독특한 연구와 통찰이 담겨있다. 이 글에서는 그 핵심내용을 살펴보는 것과 아울러 교육사회학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사회 계층과 가난의 문제를 여러 관점으로 연구해볼 수 있겠으나, 그녀는 인지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다. 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측면의 연구들이 진행되고 논의되었다. 그러나 인지적 측면에서의 연구는 미진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지적 측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다. 그동안 쌓여 온 다양한 분야의 통찰에 인지적 측면의 통찰까지 더해질 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빈곤층을 지원하여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 동일한 목적 아래 그동안 수많은 방안과 이론이 제시되었고, 이 책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1장에서 저자는 자원에 대해 논의한다. 흔히 빈곤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원을 이야기할 때는 재정적 자원의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재정적 자원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재정적 자원보다는 다른 자원들이 빈곤층과 중산층을 결정짓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재정적 자원의 유무는 빈곤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이다. 그러나 재정적 자원으로는 빈곤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 원인도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다른 자원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교육사회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특별히 빈곤층 아이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인데, 그를 위해서는 빈곤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에 대한 검토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진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그럼 사회계층과 빈곤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자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요소들을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겠다.

 2장에서는 언어와 이야기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는 빈곤층은 주로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중산층은 격식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빈곤층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산층 사회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빈곤층의 담화패턴은 결국 중산층으로 이동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이 사실은 특히 초등교육을 포함한 이른 시기의 학교교육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언어 습관이 한 번 형성되고 나면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 습관이 아직 다 형성되기 이전에 언어의 사용역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나 직장에서 쓰이는 언어가 대부분 격식 있는 사용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은 우리 교육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3장에 가면 각 계층의 불문율에 대한 연구가 나오는데, 이 책의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불문율이란 집단 내에 적용되는 암묵적 신호와 관습이다. 그런데 각 사회계층을 관찰해 본 결과, 흥미롭게도 각 계층마다 독특한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컨대 대물림되는 가난에서 ‘결정적 변수’는 재미와 인간관계이지만, 중산층에서는 이 기준이 대개 ‘일’과 ‘성취’, 두 가지와 연관된다. 부유층에서 중요한 것은 재정적·사회적·정치적 연줄의 영향이다. 그 외에도 재산, 음식, 시간, 세계관, 심지어는 유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이 불문율의 원칙이 적용된다. 신기하게도 같은 분야에 대해 세 계층이 각각의 고유한 불문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문율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빈곤층에게 중산층의 불문율을 교육하고 독려함으로써 그들의 계층이동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중산층이나 부유층에게 빈곤층의 불문율을 교육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빈곤층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일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자는 각 계층의 불문율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각 계층에 속한 아이들의 행동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도의 불문율만 체득하여도 각 계층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겠지만, 더 깊은 이해를 원하는 열정 있는 교육자라면 이 주제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연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자원 중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원은 ‘정서적 자원’이다. 그녀는 정서적 자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정서적 자원이 곧 행동의 토대이고 결국 성취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내적 자원이며, 역경과 부정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이를 이겨내는 힘이 된다. 정서적 자원과 관련하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할 모델’이다. 적절한 역할 모델이 있으면 아이는 적절한 시기에 발달 단계를 밟으며 정서적 자원을 축적하게 된다. 결국 빈곤층 아이들의 정서적 자원이 결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람직한 역할 모델의 부재 때문이다. 가정이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을 제공하는 일에 실패했다면, 이제 그 역할은 학교가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가 그 모델이 되어주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병폐 속에서 그동안 부모가 감당해 왔던 역할 모델을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 교사는 전통적인 지식전달자로서의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날이 갈수록 교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 가면 방금 살펴본 ‘정서적 자원’과 ‘역할 모델’에 대한 논의를 더욱 발전시켜 ‘관계 형성’에 대해 다루게 된다. 이 부분도 현대 사회와 교육계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교사가 학생을 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사회에서 교사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반대로 학생에게 미치는 교사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관계 형성’은 이 간극을 줄이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학생들과 관계가 형성된 교사가 갖는 영향력은 그렇지 않은 교사에 비해 월등하다. 아이들은 친밀한 관계의 교사를 통해 변화된다. 빈곤층의 아이들에게서 변화를 이끌어내어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오르게 하는 데도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주제들 외에도 지원 시스템, 훈육, 인지 전략 등 유용한 정보들이 소개되고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모든 노력의 목적은 빈곤층(특별히 빈곤 아동)을 빈곤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대물림되는 가난이다. 대물림되는 가난이란 일시적인 가난이나 한 세대의 가난이 아닌, 몇 세대를 거쳐 지속되는 가난을 뜻한다. 이 경우에는 가난을 유발하는 특징과 빈곤층의 불문율이 충실하게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세습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본문의 분량은 다소 짧은 감이 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을 달래주듯이 부록이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부록에서는 ‘첨가 모델(Additive Model)’이 소개된다. 이 모델은 저자가 설립한 아하!프로세스의 것으로 보인다. 결핍 모델과는 달리 첨가모델은 정확한 문제 인식에 긍정적이고 장점을 토대로 한, 공동체 차원의 변화 방법을 접목한다. 이 모델은 문제 상황과 사회 모순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 모델의 인상적인 내용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가난은 사람들을 순간에 휘둘리도록 사로잡아 추상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앞날을 위해 계획을 세우기 힘겹게 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가난의 함정을 발견해낼 수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급급한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특히 교사는 빈곤층 아이의 시선을 ‘순간’에서 ‘미래’로 옮기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오르게 될 것이다.

 이제 결론을 맺으려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주장한다-우리는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가 새로운 문제 해결책을 찾도록 경제적 다양성을 이해하게 해주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바른 문제인식이 선재 할 때 바른 해결책도 따라온다. 이 책은 빈곤의 원인과 계층 이동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다소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와 계층구조의 전체적인 틀은 거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본래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에도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특별히 우리 사회가 다소 간과하고 있던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는 경제 계층을 결정짓는 요인이 그저 ‘돈’이라는 통념이 있다. 이 책은 계층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그 낡은 통념을 깨트려준다. 특히 정서적 자원이나 불문율에 대한 새로운 통찰은 교육사회학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교육자를 꿈꾸는 사람은 이 책을 필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참된 교육을 위한 수많은 지혜가 이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책 부록의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다. ‘200년 전에는 노예가 경제적 필수품으로 인식됐었고, 150년 전에는 여성이 투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당연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이같이 2100년 즈음이 될 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노예제가 영원히 종식되었듯이, 가난도 언젠가는 종식될 수 있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설령 그것이 불가능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 편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결국에는 바위를 뚫는다는 뜻이다. 빈곤이라는 바위는 너무 크고 단단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결국은 그 바위를 뚫어낼 것이다. 지금은 낙관론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그 다음은 많은 동지들과 함께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한 성전(聖戰)에 참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