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1권은 강모와 효원의 초례청으로 시작된다. 명주실타래에 표주박을 묶어 서로 바꾸어 마셔야하는 의식에서 술잔 실타래가 엉키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심상치 않음이 예상되었다.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보니 1권 주요 내용은 강모의 증조부 대부터 매안 이씨 집안에 있었던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주인데, 청암부인의 기대와 달리 종손인 강모가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감을 버거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모가 사촌 강실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어 처 효원과의 갈등도 짐작할 수 있었다.

2권은 인물 개개인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자세하게 서술된다. 혼례를 올리자마자 기구한 팔자가 되어버린 효원, 남편도 시어머니도 박대하는데 친정 식구들과 왕래도 쉽지 않아 외롭기만 하다. 강모와 효원 사이에 아들이 생겨 매안 이씨 집안에 훈풍이 부나 싶었으나 집안의 기대와 달리 강모는 첩질을 하느라 부청 공금을 횡령하며 실망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강실의 마음까지 혼란스럽고 괴롭게 만든다.

매안 이씨 집안은 청암부인이 쓰러지고, 창씨 개명으로 이씨 성을 쓸 수 없는 불운한 시대적 상황을 맞아 큰 위기에 빠진다.

청암부인은 창씨 개명을 함으로 인해 '이 씨' 성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위기로 생각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인물 개개인에게 억눌려있던 갈등과 욕망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맞닥뜨리며 폭발 직전의 상황이 되어버린 게 더 위험해 보였다. 매안 이씨 집안의 새로운 기둥인 강모의 모습은, 그동안 청암부인이 굳건하게 지켜 온 매안 이씨 집안이 일제강점기를 견뎌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 강모 외에도 매안 이씨 집안 사람이든 아니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소설 속 어느 인물 하나 기구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렇게 감정을 억압하고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직 소설의 전반이지만 여러 인물에 감정 이입되어 벌써부터 고단하다.

*책 속에서*

2권 179쪽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누군가는 한 사람이 능히 열 가지 일을 하건만,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바는, 백 가지 천 가지가 넘는다. 이 무슨 고달픈 운명인가. 그저 나 하나 소리 없이, 내 생긴 대로, 막힌 데 없이, 걸린 데 없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5 : 부질없는 일. 내 한 몸의 인생에 왜 이다지도 여러 사람이 노심초사를 하는 것일까. 나로 인하여 집안에 소동이 멎을 날 없으니 어찌하여 그런가. 나는 내 가지고 싶은 것 가지지도 못하고, 내 하고 싶은 일 하지도 못했는데, 아무것도 되는 일 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혼불1권, 혼불2권, 최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