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워낙 인지도가 있는 작가님이셔서 '한번 읽어볼까?'하고 「파씨의 입문」을 빌려왔다가 몇 장 읽지 못한 채 그대로 반납했었다. 그뒤로 황정은 작가의 책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이 책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제목 외에 아무 정보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8개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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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이라는 아이를 잃은 부부 이야기이다. 주인공 부부가 유럽여행을 하며 생길 수 있는 에피소드여서 처음에는 평범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읽다가 갑자기 14년 전 있었던 아이의 죽음을 접하자 내 심장이 널뛰기 시작했다. 계곡에 빠져 축축해진 아이를 업고 뛰는 부부에게 순식간에 몰입되었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그 부분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다. 사고 이후 별 일 없이 지내는 것 같던 부부는 여행 중에 그 갈등이 극에 달하고 결국  남편은 폭발하고 ​만다. 한바탕 퍼붓고 남편이 플랫폼에 내리자 아내는 기차에 그대로 몸을 싣고 떠나버린다. 남편이 심하게 아내를 몰이붙이는 말을 할 때 아내의 말이나 속마음은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 그저 남편이 던지는 말에 의해 '아내가 지금 서글픈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구나'하고 그려볼 뿐. 내가 여자이고 엄마이기 때문인지 괜히 울컥해서 그런 아내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했다. 아이를 먼저 보내고 남은 부부가 결국 아이의 빈 자리를 메우지 못하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가슴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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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거의 다 기억에 남는다. 공교롭게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어쩔 수 없이 삶과 죽음에 관심이 생긴다. 누구나 죽는 거고, 그 죽음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글로만 접해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 그것 외에도 여덟 개 이야기 속 인물들이 모두 나한테 자기만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아 거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쓸쓸하고 따끔하고 그랬다. 누구한테나 생길 수 있는 일들이라 내 일 같기도 하고, 남 일 같기도 하고. 문장만으로 이렇게 흔들리기는 오랜만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황정은 작가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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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삶은 끄덕이고 죽음은 가로젓고. 그와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

십사 년 전에 그들은 산을 내려왔다. 아이를 그가 업었다. 그는 차가운 물을 담은 가죽 자루처럼 등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리던 작은 몸의 감촉을 기억했다. 그 몸에서 계속 물이 흘렀다. 그녀가 애의 신발을 들고 뛰었다. 그밖에 그들이 계곡으로 들어갈 때  가져갔던 것, 도시락과 돗자리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것들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십 사년 전에 그녀가 펼치고 그가 눌러놓은 그대로. 여름엔 빗물에 쓸리고 가을엔 낙엽에 덮이고 겨울엔 눈으로 덮여 지금쯤 ​흔적도 보이지 않을 테지만 매년 새롭게 갱신되는 계곡의 표층 아래, 분명있을 것이다. 그는 미끄럽고 비좁고 울퉁불퉁하고 비탈진 길을 평지처럼 뛰었다.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아이를 꽉 붙들었다. 아이의 몸에서 흘러내린 물이 그 손을 차갑게 식혔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듯 흐느끼며 따라왔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기척이 있어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뛰었다. 너무 멀었다. 아무리 뛰어도 도로가 있는 곳에 이를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심장은 너무 깊은 곳에서 멈춰버렸고 그들은 늦었다. 누구도 되살려낼 수 없었다.

아무도아닌, 황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