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기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KBS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에 빨강머리 앤을 방영했었다.

그때 정말 앤한테 흠뻑 빠져있었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그때의 향수를 떠오르게 했다.

 

힘든 시기를 ‘앤’을 통해 이겨냈다는 백영옥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빨강머리 앤’의 에피소드와 버무려서 무척 공감되는 글로 만들어냈다. ‘앤’을 사랑하는 마음이 통하는 것 하나만으로 백영옥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백퍼센트 상승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실린 그림은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매튜 아저씨나 앤의 대화를 읽을 때면 등장인물의 더빙 목소리가 자동으로 입혀져 들렸다.

그때 나는 왜 그토록 앤에게 빠졌었을까? 이제와 자문해보니 평소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머릿속 생각을 여과없이 말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자유분방한 '앤'을 보며 대리만족했던 것 같다. '앤'의 엉뚱하고 과장된 상상력과 시적 표현들까지 모두 닮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났지만 '앤'은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앤'의 무한긍정 매력에 더욱 더 빠져버린 것 같다. 책을 읽다 나를 울컥하게 한 매튜 아저씨의 한 마디... "네 낭만을 전부 포기하지는 말아라, 앤. 낭만은 좋은 거란다. 너무 많이는 말고, 앤. 조금은 간직해둬."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져준다면 난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거다.

 

**책 속에서**

29 - 앤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녀에겐 행복을 ‘그려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앤은 끝없는 사막 속에서도 오아시스를 상상하며 눈앞의 모래바람을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앤을 오래도록 사랑한 것도, 남자아이가 아니란 이유로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최악의 순간에도, 길가에 핀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그녀의 행복 재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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