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라캉의 <꽃들의 질투>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먼저 구성이 이채롭다. 밀사, 정략결혼에 희생된 아름답지만 외로운 여인, 이중스파이, 그 스파이가 쳐놓은 덫...각 장마다의 이야기들이 얽혀져 결국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둘째, 이야기를 풀어간 구성의 실마리가 재밌다. 고종황제의 밀사라는...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꺼져가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유럽열강의 원조를 위해 밀사를 파견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고종황제의 밀사, 주인공 박일환은 일촉즉발의 국운을 되살리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파리에 입성한다. 그러나 서양 국가들이 저마다 자기들 나라의 실속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풍전등화의 작은 나라를 떠올리며 실망하게 된다. 실의의 나날을 가운데 한 줄기 햇살같은  프랑스 여인 엘레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이루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결국 엘레나와의 만남조차도 로도로프라는 협잡꾼이 짜놓은 계략이었던 것....박일환은 사랑도 잃고 나라도 잃고 결국 더 강력해진 일본에 의해 상하이로 추방되고 만다. 그리고 몇 년후, 엘레나가 상하이에 찾아오는데...

그런데 아쉬운 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비교적 탄탄한 자료조사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객관적인 감정이 느껴져 아쉽다.  이자벨 라캉이라는 작가가 한국인의 내면에 깔린 정서를 읽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

그럼에도 영상으로 옮겨놓으면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만한 로맨틱한 사랑이 <꽃들의 질투>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중국 상해의 외탄거리의 이국적 건물들, 그리고 중국 산동성 반도의 연대의 외국인마을에 가게 되면 19세기의 서양 열강의 주거지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그 곳에서 리본달린 챙 넓은 모자에 하늘하늘 원피스 자락 휘날리며 다리 아프게 오르락 내리락 쫓아다니며 월츠의 선율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는데...그런데 박인환과 엘레나 같은 한국의 지식인과 유럽의 고즈넉이 아름다운 여인이 대리석 베란다와 예쁜 장미넝쿨이 잘 어우러지는 이 곳, 이 저택들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았을 것도 같다.

변방의 작은 나라, 국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의 한 지식인, 그리고 풍요로운 나라의 외로운 여인의 사랑이야기. 그 짧은 동안에 빚어진 작은 오해로 질투라는 감정까지 주고받은 그들의 영화같은 사랑이야기가  <꽃들의 질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