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토요일 오전수업이 끝나고 자율학습까지 마치면, 따로 챙겨온 사복으로 갈아입으며 여기저기 아세톤 냄새를 풍기던 친구들이 멋있어보이던 시절에 ‘노는 친구들’따라 한번쯤 해보고 싶던 일이 바로 매니큐어 바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언니의 색색 매니큐어를 발라보다 결국 연한 분홍색을 주말 내내 바르고 지웠던 기억이 새롭다.

오랜 기억을 떠오르게 한 <분홍빛 손톱>. <분홍빛 손톱>을 손에 들고 제목만큼 깜찍한 책 크기에 감격하며, 잠깐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들추어내다가, 결국 ‘저자가 <분홍빛 손톱>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탈출구 중 하나를 다룬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은 읽는 내내 즐겁고, 흥미롭다. 나라와 문화차이만큼이나 다른 성장기를 엮어가는 루리와 슈코의 어른이 된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왜냐하면, 내가 자라던 그 시절과 시간차이만큼 문화와 사회 환경이 너무 달라있어 그녀들에게는 “가능성”이란 문이 아주 활짝 열려진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루리는 고등학교 2학년, 슈코는 3학년이다. 남자들과 숱하게 잠자리를 갖는 아이라는 소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사는 루리는 평범한 여교생의 그것과 다름없는데 오로지 ‘분홍빛 손톱’을 가꾸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슈코는 앞일을 예연하고 새와 나무와 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들이 두려움을 갖게 하는 고교생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이들이 우연히 만났고, 서로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교감으로 인해 동료이상의 사랑을 키우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면서 이야기는 일단 막을 내리는데…….

그런데, 출판사에서 <분홍빛 손톱>의 루리를 소개하는 코드가 왜 ‘동성애’이고, 슈코는 왜 ‘초능력소녀’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창 성장기의 우리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센티멘털해지고, 괜히 나무나 새와도 이야기 하고 싶어지는 것 아닐까? 나와 다른 아이들에 대해 호기심과 동경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이성에게든 동성에게든.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많은 30~4대 여성들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오스칼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짝사랑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오스칼을 사랑했어도, 더 자라 어른이 되어서는 각자의 삶을 찾아갔던 것처럼…….

<분홍빛 손톱>이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하면서, 현대 청소년들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문명이 발달하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며 겪는 성장통도 점점 빨리 겪게 되는 것이 요즘의 청소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익혀야 하고, 판단해야 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점차 익숙해져야 하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책 표지의 책 소개 멘트나, 자극적으로 들리는 동성애니, 초능력소녀니 하는 단어들이 그들을 성급하게 단정 짓는 단어 같아 못내 못마땅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