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코엑스메가박스에서 진행된 VIP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원작자와 함께 보는 기회가 생기다니, 개인적으로 감회가 참 새로웠습니다.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지요.
시사회가 여러 개 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그런지 극장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영화 시사를 앞두고 들뜬 분위기가 확 느껴질 정도였죠.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원작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죠. 원작을 여러 번 읽은 데다가 극중 캐릭터들이 이미 맘속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다른 이야기와 인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었습니다. 오히려 박흥용 화백은 담담해 보였습니다. 흥겨운 잔치에 초대된 손님이자 관객으로서 영화 그 자체를 즐길 만반의 준비를 끝낸 듯했습니다. 

출연배우들의 짧은 무대 인사가 끝나고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운 분량이었는데 지루한 줄 모르고 봤습니다. 물론 보는 내내 맘이 편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견자와 황정학과 이몽학 그리고 백지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오버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쉽게 몰입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열혈 독자이자 편집자란 사실이 조금은 괴롭더군요. 원체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준익 감독의 전작들을 모두 극장에서 챙겨 볼 만큼 팬이었던 저의 또 다른 자아가 제대로 기를 못 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다른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영화에 몰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맨 뒷좌석에 있다 보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읽혀서 그랬나 봅니다. 산만한 몸짓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끔 박흥용 화백의 반응이 궁금하여 살짝살짝 곁눈질 해봤지만, 역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자연스럽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말 때문에 얼떨떨해 하는 사이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오면서 박흥용 화백의 눈치를 슬쩍 보니 역시나 영화를 보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습니다. 전에 시나리오를 미리 받아 본 적이 있었다더니, 이미 결말을 알고 계셨던 듯했습니다.
빠져나가는 관객들 사이로 이준익 감독이 보이더군요. 박흥용 화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비록 두 분 다 말씀을 아꼈지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굳게 맞잡은 두 손 위로 서로를 향한 믿음과 격려의 에너지가 느껴지군요.  

다음 약속은 <사시인> 고재열 기자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원작과 영화를 모두 본 고 기자가 영화를 갓 보고 나온 박 화백을 처음으로 인터뷰하는 자리였습니다. 과연 기자다운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박 화백은 말씀을 많이 아끼셨습니다. 행여 별  뜻 없이 한 이야기가 영화에 누가 될까 싶은 거였죠. 옆에서 지켜 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박흥용 화백은 원작과 다른 영화의 독립성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정말 뛰어난 스토리텔러라고 하시더군요. 특히 원작에선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 이몽학의 캐릭터에 엔진을 달아서 결말까지 쉼 없이 쭈욱 달려가게 했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원작의 방대한 분량을 2시간짜리 영화로 압축하면서 인물들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성과가 대단하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고재열 기자가 소개할 테니 저는 이만 줄여야겠군요. 다음 주 <시사인>에 나온답니다.  

끝으로 개인적인 영화 감상평을 덧붙이자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꽤 묘한 매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재미있다, 감명 깊었다" 뭐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시원하게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하는 사람에 따라서 수도 없이 많은 답변이 기대되는 영화라서 그렇습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이준익 감독이 원작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는 성과는 인정해야겠습니다. 더군다나 국내외에서 그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었기에 훨씬 더 많은 고민이 뒤따랐겠지요. 
박 흥용 화백과 이준익 감독 모두 고수가 맞긴 한가 봅니다. 원작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 다한 이준익 감독도 그렇고 전혀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로 재탄생한 영화에 딴지를 걸기는커녕 독창성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는 박흥용 화백이야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습니다.  
  

by 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