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Yoga for people who can't be bothered to do it)/ 제프 다이어 Geoff Dyer/ 김현우/ 웅진지식하우스/303면/ 2015.20.3. 인터파크/~3.31

처음엔 토요일자 신문의 서평을 보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이 사랑하는 동시대 작가라는 홍보문구가 적힌 띠지를 보았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독특한 제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산 계기는...

제프 다이어라는 작가는 처음 듣는 작가였다.(솔직히 이언 매큐언이나 줄리안 반스 등 몇몇 유명 작가들만이 간신히 알지 현대 영국 작가들의 이름을 알거나 그들의 책을 읽을 기회는 별로 많지 않아 그렇게 미안하거나 자책스럽지는 않지만...)

이 책은 세상의 폐허라 불릴 만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폐허’라는 주제를 잡고 떠난 여행인지 아니면 여행기를 모으다 보니 ‘폐허’라는 단어에 주제가 맞춰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보다 10여 년 전에 발행된 책이다)  

모든 것은 유일하다.

한 인생에서 어떤 것도 한 번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느 여인에게서 얻었던 육체적 즐거움,

어느 날 먹었던 절묘한 요리,

그 둘은 절대 다시 맛볼 수 없다.

반복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은 비할 바가 없다.

- 공쿠르 형제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심지어 지금 이 순간도,

그리고 나 자신도.

- 니체

이런 경구로 책은 시작된다.

로마를 시작으로 리비아의 ‘랩티스 마그나’, 미시시피 강가의 뉴올리언스,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캄보디아, 파리,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블랙록시티...등 책에 나온 여행지의 순서가 작가가 여행한 순서와 일치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내용은 왔다갔다 건너뛰거나 지나가거나 한다. 마흔줄에 들어선 독신으로 추정되는 작가는 그 도시나 지역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때론 여자친구와 동행하기도 하고, 새로운 여자를 사귀기도 하며, 어김없이 마리화나나 약물에 취하거나 맥주를 마신다. 뭔가 허무주의에 빠진 듯한, 뭔가를 간절히 갈구하기에(예를 들면 책 쓰기나 글쓰기?) 더욱 현재를 허무나 비관으로 유보시키는 듯한 작가의 태도는, 그가 들어선 고장의 폐허와 같이 허물어지거나 적막하거나 버려진 것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재치있는 비유나 시니컬한 그의 시선과 문체는 어쩌면 영어원문으로 읽는다면 그 묘미가 더 클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끔 했다. 그러나 뭐라고 할까, 특히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에서의 체류기들은 (흔한) 서양인들의 동양 체험이라는 클리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문체나 글쓰기가 아니라 정서나 시선에 있어서) 어떤 찜찜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럭저럭 책을 넘기다 내가 제대로 집중하게 된 것은 책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디트로이트 부분에서였다. 어쩌면 이 여행기의 실질적인 그리고 상징적인 종착지가 아니었을까? 디트로이트는... 아끼던 선글라스를 잃어버린 채 절망에 빠져(^^) 한 락 페스티벌 취재차 이곳으로 온 작가는 여러 미술관과 한때 번창했으나 지금은 버려진 옛 폐허지, 공원, 호텔 등지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늙은 부랑자들을 보며 행복의 개념에 대해 생각한다.

- 그렇게 버려진 사무실 밀집 지역, 녹슬고 먼지 낀 콘크리트와 판자를 대놓은 창문들이 수직으로 늘어선 것들을 본 나는 건물은 한순간에 폐허가 되는 게 아니라 그 건물 안의 무언가가 폐허를 갈망하는 거라는 평소의 확신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건축과 의약품의 목적은 모두 몰락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목재에 보존재를 바르고 건강이나 성공 따위를 지지대 삼아 우리 자신을 유지하고 비와 습기 그리고 녹 같은 것들이 침투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 완전한 몰락과 포기의 순간을 조금 더 유예시키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하루의 맨 처음 마시는 술을 가능한 한 늦게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 오래 미루면 미룰수록 그 순간의 기분은 더 좋을 것이다. (266면, 안네 내리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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