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Nick Hornby "The Complete Polysyllabic Spree") / 닉 혼비/ 이나경/ 청어람미디어/ 2009.5.18.1쇄/2009.6.2/ 인터파크~ 6. 30

읽고 싶어 근질근질한!

  독서의 시작은 책의 첫 문장을 읽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책을 주문한 후 기다리는 시간부터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혹은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그 순간이나 서점에서 마음을 뺏기는 순간부터?). 일단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앞뒤로 책장을 넘겨보고 단락별 제목도 훑어보면서 이 책은 대충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겠다는 나름의 선입견을 쌓기도 한다. 손에 책을 쥐고서도 어서 빨리 읽고싶어 근질근질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 책 <닉 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읽기>가 나에게 그랬다. 6월 2일 책을 받아 놓고 다른 일 때문에 근 일주일 간 책상 한쪽에 밀어놓았던 이 책을 바라보면서 “아, 읽고 싶어라!”를 연발했으니….

리뷰를 리뷰하다

  ‘리뷰’ 자체가 문학의 한 장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평이나 에세이와 같은 형식으로 독서를 독서한 책이 많아 나온 것 같다. 얼핏 떠올려 봐도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나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있고, <내가 읽은 책과 세상>과 같은 제목도 떠오른다. 다른 사람이 다른 책을 읽고 그 감상을 적은 글을 책으로 읽는다는 게 어찌 보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같은 독자의 처지가 되어 서로의 생각이나 감상을 비교해 보는 것이 바로 리뷰를 읽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리뷰를 또 리뷰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남의 감상을 또 감상 혹은 평해야 하다니!…  

어바웃 어 보이, 어바웃 어 라이터

  솔직히 ‘닉 혼비’란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휴 그랜트가 나온 영화 <어바웃 어 보이>나 존 쿠색이 나온 <하이 피델리티>와 같은 영화의 원작자가 닉 혼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아하, 하고 짧게 아는 척 하긴 했지만.

  원제가 “The Complete Polysyllabic Spree”로, ‘완전한 다(多)음절로 떠들어대기’(? I’m not sure..ㅠㅠ) 정도 될 것 같은 이 책은 영국의 까칠 작가 닉 혼비가 <빌리브>라는 미국 잡지(48명의 편집위원이 흰 옷을 입는 것으로 봐 조금은 종교집단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에 2003년 9월부터 2006년 6월까지 3년 가까이 쓴 리뷰를 모은 책이라고 했다(실제로는 2008년 9월까지 썼다). 

  닉 혼비는 영국 아스날팀의 광팬으로서 ‘문예소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마음을 주지 않는, 현대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작가 같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사생활도 슬금슬금 나오는데 매제와 여동생이 모두 작가라는 것과 그의 아이 중 한 명이 자폐아라는 사실, 이혼한 전처가 있고, 담배를 피우고, 락음악에 조예가 깊고(락음악에 대한 관심도를 조예라는 표현으로 써도 된다면) 등을 알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까칠하지만 개성 있고, 무게 잡기보다 가벼움을 택하고 싶은, 글 잘 쓰는 작가 같다(영국 유수의 문학상들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57년생으로 나와 있는데, 50대 중반 아저씨의 글치고는 상당히 세련되고 젊은 느낌이 팍팍 난다. (사진은 구글에서 찾아보면 많이 나오는데 책에 있는 커리커쳐보단 올드하시다) 

  솔직히 영국의 현대문학이 우리에게 급속도로 다가온 것은 최근 몇 년이지 않을까?(나만 그런가?)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을 위시로 이완 매큐언과 같은 소설가를 통해 현대 영국 문학이 비로소 우리에게 다가온 것 같다. 그 이전엔 프랑스 문학이나 미국 책(^^)이 ‘외국서적’으로 더 크게 자리 잡았으니까. 때문에 닉 혼비를 몰라봤음에 그다지 미안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여기까진)

키득키득, 킥킥킥

  비꼬고 빈정대고 또 냉소 짓기도 하지만 솔직한 게 매력인 닉 혼비의 스타일은 성석제나 은희경? 혹은 딴지일보 김어준의 느낌이 조금씩 연상되는 듯하다. 보도 듣도 못한 책들과 작가들에 대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며 계속해서 키득키득 대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의 환상에 대한 두 편의 글을 보면,

  이언 뱅크스의 <극단>을 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미칠 것 같았다. 계산을 기다리는 줄에서 내 뒤에는 근사한 미술잡지를 쥐고 있는 몹시 매력적인 여성이 서 있었다. 내가 표지에 우주선이 그려져 있는 이 보라색 책을 사는 이유는 <빌리버> 때문인데, <빌리버>도 그녀의 미술잡지만큼이나 근사한 잡지라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은 왠지 모를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드물게도 어른스럽게 나는 그 충동을 견뎌냈다. 그녀가 뭐든 마음대로 생각해도 된다고, 나는 마음먹었다. 어쨌든 우리 사이가 어떻게든 더 이상 진전될 일은 없을 테니까. 나도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고, 그녀도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나보다 25살은 어린 데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빌리버> 잡지는 그다지 근사하지도 않다. 만약 우리가 사귀게 된다면, 그녀가 처음 알게 될 실망스러운 사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빌리버>의 정체일 것이다. (226면)

  여러분의 나라에도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가 있는가? 여기 영국에서 그 시리즈는 젊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문학애호가들에게 큰 의미를 지녔었다. 지적 진지함, 그리고 역시 책을 좋아하는 여자들과의 하룻밤에 대한 욕망/의욕의 표시로 내 친구들과 나는 눈에 띄는 연두색 표지의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 한 권을 늘 가지고 다녔다. 물론 효과는 없었지만,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236) 

그리고 절망!

  단 한 권도 없었다. 언급한 작가들 중 체호프나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롤랑 바르트 등의 유명 작가들의 책들은 물론이고, 그나마 내가 몇 권은 읽은 오즈 에이모스나 이안 매큐언의 책들도 하나 같이 빗겨 갔다. 간혹 <미스틱 리버>나 <위대한 유산>, <반지의 제왕> 등도 나왔지만 듣기만 했을 뿐 읽은 책은 아니었다.

  고로, 닉 혼비가 3여 년 동안 읽은 책 중에 내가 읽거나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절망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영국과 한국의 거리가 차이나고 작가와 독자라는 다른 위치에 서 있지만, 이토록 교집합이 없단 말인가? 우리가 같은 책을 읽었을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은 생각이나 정서면에서 화성과 금성 차이만큼이나 다른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일밖에 안 된다. 설마설마 하며 읽다가 끝내 내가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 책은 참으로 다양한 책과 작가를 언급하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읽는 재미를 안겨주는 책이다. 읽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사람이거나 현대 (잘 나가는) 영국 작가의 생각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거나 남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나처럼) 닉 혼비의 독서 리스트에 간신히 낄 자신이 없어 끝내 자신의 무식함을 탓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단 한 권도 리스트에 오른 책을 읽지 못했지만, 앞으로 닉 혼비라는 작가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져 볼 생각이고, 그의 책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상당히 매력적인 영국작가로 기억할 것 같다.

*번역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책은 번역이 작가의 스타일을 잘 살린 느낌이 든다. 한국어로 번역했지만 어색하지 않고 오리혀 작가의 문체처럼 여겨지니까. 

*아, 이런 표현도 있었다. “이 동네는 마치 신이 나서 손뼉을 쳐대는 북한 같은 곳이다.(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