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 / 문학과 지성사 / 류재화

 

11월 15일에 책을 받아, 매주 월요일 저녁 한의원 가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읽었다. 해설과 연보 포함 155면에 불과한, 총 27장으로 된 이 책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치 사탕 오래 빨아먹기를 하듯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며 거의 한 달에 걸쳐 읽어냈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차가울 정도로 정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장(章) 한 장 그대로 그림이나 음악, 영화, 시가 될 수 있을 것처럼 스토리와 뉘앙스, 혹은 정서의 배경막이 잘 설치되어 있어 짧은 한 장을 읽는 데도 정성을 들여 한 자(字) 한 자 음미하고 확인하며 읽게 되었다. 아름다움이 애절함 혹은 슬픔과 같은 정서적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이 책은 분명 ‘아름답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단어를 나로선 찾을 수 없는 것이 나의 감상소감이다.

 

아주 오래 전 영화로 <세상의 모든 아침>을 봤다. 가물가물 기억나는 건 마랭 마레의 역할을 맡은 제라드 드 파르디외 부자(父子)의 모습뿐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을, 고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참 후에야 원작자인 작가 파스칼 키냐르를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2000년대 이후 한국에 번역된 『은밀한 생』(Vie secrete)을 읽고 난 뒤부터인데, 지금까지 한글로 번역된 키냐르의 모든 책(9권)을 읽어왔지만, 그가 한국에 맨 처음 알려진 『세상의 모든 아침』(1991)이 이제야 새로 번역되어 나오고, 또 읽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찾아보니 『세상의 모든 아침』이란 이름으로 2009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출간된 적 있지만, 번역과 문지 라인에서 벗어난 거라 열외).

 

잘 알려지다시피 이 책은 음악을 도구로 기원의 심연으로 도달하고자 한 한 음악가 생트 콜롱브의 이야기다(“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역사 속 호흡 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120면). 파스칼 키냐르는 ‘속세에서 한자리 차지했던 유명인 마랭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 스승이며, 비올라 다 감바에 현 하나를 덧붙여 더 깊은 저음을 연주했다’는 기록 하나만 가지고 속세에서 잊힌 인물인 생크 콜롱브를 새롭게 발굴하여 재창조해냈다. 소설 속 모든 설정은 그럴 듯한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두 딸도, 두 딸과 마랭 마레와의 로맨스도, 비극도, 생트 콜롱브가 마랭 마레에게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소리들을 가르치는 방법(벌판의 바람소리, 소년의 뜨거운 오줌소리, 연극배우의 발성 등등) 등 모두가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 속에 안개처럼 깔린 처연한 이미지와 느낌, 철학, 특정 단어 등은 이후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 더욱 확장되어 이 소설이 키냐르 소설의 시작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아름다운 책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었음이 참으로 다행이다.

독서다운 독서와 리뷰다운 리뷰를 거의 하지 못한 채 올해를 마감을 해야 하는 지금, 그나마 이 책에 대해 쓰게 되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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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부터 여쭙고 싶은 데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

“왜 연주하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가은 헌물일세.”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 마랭 마레-콜롱브의 대화 /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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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질 수 없어 고통스러워요.”

“바람 말고는 만질 게 하나도 없어요.”

아내를 사자(死者)처럼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바람이 되면 고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이 바람은 우리에게까지 약간의 음악 조각들을 실어 나른답니다. 가끔 빛은 당신의 눈빛에까지 우리 모습의 조각들을 던진답니다.:

- 죽은 아내와 콜롱브의 대화 / 9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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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

…

“그것은 어려운 일일세.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음악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가?”

“그건 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자넨 틀렸네. 신은 말하지 않는가.”“그럼 귀를 위한 것입니까?”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이 귀를 위한 것은 아니네.”

“그럼 황금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 황금은 들을 수 없지.”

“영광입니까?”

“아니네, 그건 명성에 불과하네.”

“그럼 침묵입니까?”

“그건 언어의 반대말에 불과하네.”

“경쟁하는 음악가입니까?”

“아냐!”

“사랑입니까?”

“아냐.”

“사랑에 대한 회한입니까?”

“아니네.”

“단념을 위한 겁니까?”

“아니야, 아니야.”

“보이지 않는 자에게 바치는 고프레를 위한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네. 고프레가 뭔가? 그건 보이지 않나. 맛이 나고. 그건 먹는 거 아닌가. 그건 아무것도 아니네.”

“더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죽은 자들에게 한 잔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자신을 태우게나.”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호흡 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

- 생트 콜롱브와 마랭 마레의 대화 / 118~1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