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The End of Night : Searching for Natural Darkness in an age of Artificial Light(2013) /  폴 보가드 Paul Bogard / 노태복/ 뿌리와 이파리/ 463면/ 2014.11.10(초판 발행) 2015.2.3. 인터파크/ 2015.5.30~2016.1.3 

대학시절 처음 읽은 이태준의 <무서록>에는 ‘밤’이라는 수필이 나온다. “동경서 조선 올 때면 늘 밤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였다...”로 시작되는데, 기차가 낯선 역에 불시 정차하면 박쥐처럼 오락가락하는 역원들과 멀리 남폿불이 간신히 보이는 풍경 속에서 작가는 어둠의 밤 그대로를 느끼며 밤의 실물에 감탄하곤 한다. 이후 이태준은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여 동경 가서도 불 없이 노는 회(會)를 만들어 여러 친구와 다음날 해가 돌아오도록 긴 어둠을 즐기곤 했다고 한다.

어둠을 즐기는 모임은 내가 너무나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인데, 그럴 때면 언제나 “동경서 조선 올 때면..”을 혼자 읊조리며 사무치게 그 정서와 느낌을 그리워하곤 한다.

 

내가 아, 이것이 어둠이구나, 하고 진짜 어둠을 실감한 때는, 오래 전 강원도 인제 미산리 부근 설피밭에서였다. 아직 오리지널한 인제가 자연 그대로 숨 쉴 무렵이었는데, 별도 없는 밤이 그야말로 깜깜했다. 여러 친구들과 민박집 방에 누웠는데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좋아하던 남자애와 숨을 죽여 서로를 만졌는데 그 아슬아슬한 느낌은 어둠의 밀도 못지않았다.

 

밤에 잘 때 틈틈이 읽기 시작해 막판에 몰입하여 새해 연휴에 다 읽은 책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The End of Night : Searching for Natural Darkness in an age of Artificial Light(2013) /  폴 보가드 Paul Bogard / 노태복/ 뿌리와 이파리).

밤 혹은 어둠이 현대의 인공불빛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와 적대적인 이미지로 왜곡되었는지, 빛공해로 넘쳐나는 도시의 위험은 무엇인지 과학자, 의사, 자연활동가, 작가, 전염병학자, 천문학자, 성직자 들을 찾아다니며 ‘어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현재 제임스 메디슨 대학에서 창의적인 논픽션과 환경문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폴 보가드의 이 책은 명료한 실증서로서뿐 아니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책장을 넘기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밤과 어둠과 별과 자연, 생명과 환경, 지구와 우주, 삶과 죽음, 영성과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나는 책에서 밑줄 친 부분을 타이핑 쳐서 기록해 두는 편인데, 이 책은 하도 다시 쓸 게 많아서 제발 그만! 하고 외쳤을 정도로 좋은 글귀도 많다. 특히 뒤편의 각주에 대한 설명서가 54면에 달하는 걸 보면, 저자가 얼마나 정성들여 한자 한자 쓴 것인지 그 정성에 탄복하게 된다. 또한 ‘국제어두운밤하늘협회IDA’나 ‘별빛 보호구역’과 같은 게 실제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힘겹게 지구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책을 다 읽은 이 밤, 문득 떠오르는 음악은, 지금은 유튜브에서도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오래전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종종 들려주던 그룹 스카이의 ‘Night Sk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