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예술) <나의 사적인 도시> / 박상미 / 난다(걸어본다 03, 뉴욕) / 302면/ 2015.4.15. 초판1쇄/ 2015.6.18. 교보/ ~6.28

좋은 작가를 따라가며 읽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한 작가의 시작과 성장을 통해 나 또한 같은 과정을 밟아가며 성숙해진다는 생각이 들고, 매번 읽을 때마다 자신의 첫 선택이 옳았음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내가 ‘집착’하며 출간될 때마다 놓치지 않고 읽고 있는 작가로는,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를 비롯해 한국 작가 김채원, 이성복, 배수아가 있다. 우리집 책장에는 이들을 위한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나만의 이 ‘선정된’ 책장 위에 모시고 싶은 또 한 명이 있으니, 바로 박상미 작가이다.  

 

다작의 작가도 아니고 남들이 다 아는 유명 소설가나 시인도 아닌 미술가이자 에세이스트인데, 어찌하다 보니 그가 펴낸 세 권의 책- <뉴요커>, <취향>, <나의 사적인 도시>-을 다 읽게 되었다.(그는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올 봄 <나의 사적인 도시>가 출간되었을 때, 몇몇 신문에 인터뷰 기사와 책 소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어마 저 사람들이 박상미 작가를 어찌 알았지? 하며 혼자 놀라곤 했다.

 

 

나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작가를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좋아할 때 기분 나쁘거나 갑자기 관심이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나만 알고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번이 그랬다.

박상미 작가는 뉴욕에 살고 있는 에세이스트이자 번역가인데, 지난 2004년 출간된 그의 첫책 <뉴요커>(마음산책)는 센트럴파크를 노란 천으로 뒤덮은 ‘게이트, 센트럴 파크 프로젝트’(크리스토) 장면을 스케치한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패션지와 드라마 속 이미지와 느낌으로만 떠다니는 뉴요커가 아니라 실제 걷고 보고 사는 뉴요커의 감성을 그려내려 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디 앨런의 뉴욕,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지하철의 뉴욕, 걷는 자들의 뉴욕, 구석구석 숨어 있는 뉴욕, 가난한 자들에게 호사스러움을 안겨주는 뉴욕의 단면들을 볼 수 있었다.

(기실 화려함이란 부자의 것이라기보다 가난한 자의 것이 아닐까. 돈이 많아질수록 객관적인 화려함의 정도는 커지겠지만 상대적으로 느끼는 화려함의 정도는 작아질 것이기에. 그래서 난 부자가 되기 전에 어서어서 가난한 자의 화려함을 즐겨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 가난한 날의 호사, 78면)

 

이어 2009년에 읽은 <취향>(마음산책)은 본격적인 미술, 패션, 인테리어 취향에 대한 탐구서이다. 뉴욕의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취향은 또 하나의 자아이기에 이들의 주거방식, 패션, 인테리어, 예술 등을 통해 삶의 ‘열망’의 형태들과 모양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물을 깊이 있게 차별해서 지각하고 보는 경험은 일생 동안 축적이 되고 결국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게 되지요. 그게 취향이에요. 그리고 취향이란 그 사람의 감성의 풍향계라 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미적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지표 같은 거라는 얘기죠. - 빌 벤튼과의 인터뷰 중)

<나의 사적인 도시>(난다)는 박상미 작가 개인 블로그의 글들을 엮은 뉴욕과 예술에 대한 글모음이다. 지금까지의 저자의 책들이 그러했듯 뉴욕이라는 도시의 예술 공간들을 헤집고 다니며 만난 일상에서의 예술, 또는 예술과도 같은 일상의 이야기들은 여느 여행기나 생활 에세이에서는 만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자 체험이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해박한 작가가 들여다보고 풀어보는 ‘사적인’ 세계는 지적호기심을 마구 자극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음미하고 뒤돌아보고 살펴보는 방식의 색다른 책읽기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또한 책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예술가들과 명사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로 나뉘는데(물론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어디선가 많이 듣기도 하고 읽기도 했지만 정확하게는 안다고 할 수 없었던, 예를 들면  발튀스, 비숍, 에즈라 파운드, 엘리스 먼로와 같은 이름들을 계속 반복해서 발음할 수 있어서, 이제는 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슬며시 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즐거운 기억이다.

 

이 책은 내가 문래예술공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갑자기 출퇴근 거리가 한 시간 이상 생기면서 돌입한 나름 ‘지하철 책읽기 프로젝트’의 제1권으로, 6월 18일부터 28일까지 10일간 5호선 지하철에서 읽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차용하여 나의 개인 블로그 ‘나의 사적인... 문래동 이야기’(http://jungheehan.blogspot.kr/)의 제목을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우아함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벨트 파크웨이를 타면 베라자노 브리지가 보인다. 가늘고 길고 단순한 모습이 무척 우아하다. 미국에서 아마 가장 긴 현수교였던 것 같은데 육지의 한 점과 다른 한 점을 연결하는 우아한 하나의 선. 인생에서 ‘우아함being graceful, elegant(한국어에서 우아함이란 단어는 때로 오염된 듯 느껴진다)’을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삶이라는 상황에서 우아함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경우에도 우아함을 잃지 말라고,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뜻은 높고, 판단과 실행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야 하고, 태도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의롭고 외로운 여왕이나 장군을 떠올리라고. 영예로운 뜻과 반듯한 말과 생각, 칼날 같은 실행이 있다 해도 관용이나 인간적 연민이 없다면 우아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곧음만을 자랑하던 직선이 몸을 살짝 구부려 공간을 품을 때 비로소 우아한 곡선이 된다. 베리자노 브리지는 브루클린의 한 지점에서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지점까지 그렇게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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