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도와 영토> / 미셸 우엘벡 / La Carte et Le Territoire / Michel Houellebecq/ 문학동네/ 518면/ 2011. 9.9(1판2쇄)/ 2012.1.13. 인터파크/ ~2014/12. 25~2015.1.4

2012년 1월에 산 책을 3년이 지나 다 읽었다.

처음 몇 장 들춰보고 접은 이후 항상 읽어야 할 책 리스트로 대기중이었건만 쉽게 손을 대지 못한 것은 그 동안 책을 너무나 안 읽었던 것이 무엇보다 첫 번째 이유고, 518면이라는 두께가 두 번째 요소였고, 세 번째는 아마도 ‘미셸 우엘벡’이라는 이름 앞에 너무 많은 긴장을 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신정연휴를 기해서 다 읽었다. 읽어냈다.

미셸 우엘벡은,,, <소립자>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서 어쩌면 다시는 그 강한 태양광선 같은 입자들의 공격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른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게끔 만든다. 그랬다. <소립자> 이후로 <어느 섬의 가능성>을 읽었을 때는 그 강력함이 조금 줄어들었고, 이 책 <지도와 영토>는 기존의 자기장에서 많이 멀어진 또 다른 우엘벡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충격이 덜해졌다는 것이지 책의 의미나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지만.      

워낙 미스테리한 인물이고 프랑스 문단이나 독자층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적 인물이지만, 이번 책의 소재들은 보다 대중적이거나 많이 알려진 내용들이라 약간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엘벡은 이 책으로 (우엘벡이 아닌 독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2010년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유명 건축가의 아들인 사진작가이자 화가인 제드 마르탱이 미슐랭 지도를 활용한 작품으로 화단의 기린아로 등장하고 여기에 러시아 미녀와 사랑과 헤어짐이 붙으며, 유명작가가 된 제드가 유명소설가인 ‘미셸 우엘벡’의 해설을 받기 위해 은둔자의 집을 찾고, 그 와중에 미셸 우엘벡이 사상초유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되고, 이 사건을 실마리를 찾아 형사가 등장하고, 사건이 해결된다. 굳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는 얘기다.

현대미술계의 지도와 흐름, 고유명사들과 사회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스스로를 살해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충격을 주지만, 전작들에 비해 묘사의 잔인성이나 노골적인 성애는 없다. 그리하니 조금 안심하고 읽어도 되고, 의외로 스토리가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마치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온 스웨덴의 시리즈 영화 ‘밀레니엄’ 류의 영화를 보는 듯도 했다.

 

 

 

>> 사람의 목소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눈빛 또한 목소리 못지않게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대개 노화가 무엇이지 한눈에 보여주는 육체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와 눈빛만은 끈질기게 건재해, 성격이나 꿈, 욕망 등 한 인간의 개성을 결정짓는 모든 것을 가혹하리만치 반박할 수 없게 증명한다. - 277면 -

>> 삶은 때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만, 너무 비겁하거나 우유부단해서 그 기회를 덥석 움켜잡지 못하면 이내 거두어 가버린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순간이, 그 순간은 며칠 동안, 때로는 몇 주 혹은 몇 달 이상 지속된다. 대신 인생에 정말 단 한 번, 꼭 한 번뿐이다. 나중에 아무리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려 해도 불가능하다. 더 이상 열정과 신뢰와 믿음을 위한 자리가 없고, 희미한 체념과 서로를 향한 서글픈 연민과 뭔가 일어날 수도 있었으리라는 적확하고 무의미한 감정만이 남을 뿐, 우리에게 주어졌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만 증명한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 302면 -

>> 늘 메모하고 문장들을 늘어놓아볼 수는 있지만, 소설을 쓰려면 이 모든 것이 촘촘해지고 논박의 여지가 없게 될 때가지, 필연이라는 진정한 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면서 소설은 절대 소설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책은 굳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콘크리트 블록과도 같아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기 그렇게 존재하며 무기력한 번민 속에서 책이 저절로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 305면 - 

>>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노화를 인식한다. 혼자서는 늘 영원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 49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