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이성복/ 문학과지성사)

≫ 비유컨대 욕망, 상상력, 믿음은 한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세계가 외부 세계와 접하는 위치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것이다. 그 셋의 작용을 갈라 설명하자면, 욕망은 부재하는 대상을 꿈꾸고, 상상력은 그 대상을 그려내며, 믿음은 그 대상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 셋은 대상에게 ‘요지부동의 본질 irréductible essence'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믿음의 문제, 상상력과 욕망, 23면-

≫ 믿음의 변화 작용이 가장 구체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에서이다. 화자의 말에 따르자면 사랑은 ‘믿음의 변동variation d'une croyance'에 불과하기에 본질적으로 ’무(無)néant'이다. 즉 사랑은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이 만들어내는 믿음들의 총체일 뿐이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보다 ‘먼저 존재하고préexistant' 항상 ’유동적mobile'이다. 사랑이 한 대상에 일시적으로 조정되는 것은 그 대상이 다른 대상들에 비해 특별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 대상을 손에 넣기가 ‘거의presque'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손에 넣는 방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며, 그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사랑은 우리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한 대상에게 고착된다. 따라서 “실제의 여인은 (우리의 사랑) 속에서 거의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실제의 여인은 단순한 매개체에 불과할 뿐, 사랑의 진정한 대상은 그 여인을 향한 우리 자신의 믿음들의 총체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믿음의 문제, 사랑의 오류와 도착, 29면-

≫ 요컨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를 매개로 한 다른 것에 대한 사랑이며, 타인은 또 다른 타인에게로의 안내자일 뿐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믿음의 문제, 사랑의 오류와 도착, 31면-

≫ 예술가의 천재성은 그가 관찰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믿음의 힘과 비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믿음의 창조성, 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