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푸른 독서 노트> / 미셸 투르니에 / 이상해/ 현대문학/ 2008.1.27초판1쇄/ 11.5. 인터파크~11.29

내 인생 최초의 책은 무엇이었을까?

형제가 많은 집안이 그러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동화책에서부터 언니오빠들의 교과서나 팝 송책, 아버지의 ‘정전기법’과 같은 서적, 집으로 오는 온갖 잡지 등 가리지 않고 읽어댔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상하게 ‘처음’으로 마음에 남는 책은 마해송의 동화책이다. 아마도 언니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 같은데 아주 꼬마였던 내가 보기에도 옛날 책이었다. 서울의 한 가난한 소년이 구두닦기 하는 이야기인데 눈이 내리는 날 소년이 “구두 닦아요~”하며 뛰어가고 가로등 아래로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 같은 게 아득하게 떠오르는데, ‘십 원’이 아니라 ‘십 환’이라고 해 그게 무슨 소린지 한찬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로 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금성출판사의 30권짜리 세계명작동화집! 북극의 크리스마스 전경에 대한 그리움(김종삼의 시에 나오는 소년마냥), <굵은 다리 베스 공주>와 같은 이상한 이름의 책…, 지금도 내가 제일 고마워하는 전집이다. 이후로는 너무 조숙하여 <한국문학전집>을 읽었는데, 야한 내용이 많아 언니오빠들이 걱정스러워하기도 했었다. 

미셸 투르니에에게 첫 책은 셀마 라게를뢰프가 쓴 <닐스의 모험>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 제르맹 앙 레에 있던 내 방으로 그것을 가져다주셨던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며 아홉 살에 받은 그 책을 자신의 넘버원으로 삼으며 그 책을 통해 위대한 문학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위대한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훌륭한 일을 한다면, 그와 비슷한 글을 쓰는 일이 될 거라고 예감했다.’ 책 한 권이 우리에게 미치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그는 맛본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책에 대한 애틋한 경험을 가진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자신의 아홉 살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듯 어린이들에게 동화작가와 동화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소재는 동화이나 내용은 상당히 고차원적이라 어른용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유명한 동화책은 왜 ‘여행’에 대한 내용이 많은 걸까? <80일 간의 세계 여행>,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 앨리스>, <닐스의 모험>등…. 인생 자체가 ‘꿈과 모험’이기 때문일까?

이 책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동화책의 이면 -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롤의 소녀애, <닐스의 모험>을 쓴 셀마 라게를뢰프가 소아마비로 평생을 고독하게 산 것 등 - 을 통해 책에 새로운 평가와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화 이외에 잘 모르는 작가에 대한 소개도 많지만 하나의 텍스트로 충분한 글이기에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다. 작은 책이고, 오히려 뒤에 부록처럼 붙은 투르니에 인터뷰가 더 재밌다. 

이 책은 대부분 늦은 퇴근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그래서 훌륭한 책의 내용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다시한번 더 정독해야겠다. 


*P.S: 책에 <땡땡이의 모험>이란 이름이 자꾸 나오는데, 잘 모르는 책이었다. 근데 어제 본 루이 말의 <마음의 속삭임>에서 주인공들이 <땡땡이의 모험> 책에 대해 몇 번 이야기해서 반가웠음.  

	>> 철학이 앎에 있어서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 벌이는 대결의 심판 역할을 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대결은 한쪽의 완전한 우세로 끝날 수도 있다. 대상이 주체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묵시적으로-혹은 무의식적으로-채택하는 철학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합리성은 외부세계의 배타적 특권이다. 사물은 그 자체로 전적으로 합리적이다. 우리가 그 구조를 파고듦에 따라 점점 더 미묘하고 섬세한 방식에 따르긴 하지만 사물은 뼛속까지 합리적이다. 모든 합기들로 가득한 마그마, 즉 인식하는 주체 쪽에 있다. 과학의 역사는 세상의 질서에 전적으로 투명해지기 위해 주체가 규율의 힘으로 그 모든 잡동사니를 제거해나가는 자정(自淨)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이 절대적 사실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절대적 관념론’은 -말브랑슈에서 버클리에 이르기까지- 외부 세계에 있는 모든 종류의 실재를 부인한다. 사물은 그것들이 인식되는 한에 있어서만 존재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의 특성은 전적으로 주체의 활동에서 유래된다. 앎에 관한 모든 이론은 그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 39~40면/ 위대한 작가이자 뛰어난 지리학자 쥘 베른 - >> “… 내가 디킨슨을 사랑했던 것처럼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잭 런던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처럼 내가 결코 만나지 못할,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게 될 몇몇 개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글을 쓴다. 난 그들을 위해, 세상만사가 바뀌어도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운명, 웃고 희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죽게 될 운명 앞에서 그들이 덜 외롭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피에르 그라피에) - 124면 꼬마 악마를 사랑하는 작가, 피에르 그라피에 - >> 당신의 주된 성격적 특질은? “느림, 저의 미성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어요.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닌지 궁금할 정도로요. 제가 첫 책을 낸 것이 마흔두 살 때였으니까요. 전 엄청난 반추동물입니다. 제가 마침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제 소설과 콩트의 주제들이 몇 년 동안 제 안에서 무르익어야만 합니다.…” - 175면 작가 인터뷰 중 -  >> 당신 생각에 완벽한 행복은? “창조. 인간은 창조를 함으로써 신과 가장 가까워집니다. 국가, 건물, 그림, 교향곡, 책 등등의 창조. 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창조라 할 수 있겠죠. 그 경우, 행복의 절정은 천재적인 아이를 기르는 것이겠죠. 애정과 찬탄을 결합시키는 것.” - 178면 작가 인터뷰 중 - > 당신의 좌우명은? “난 널 열렬히 사랑했다. 넌 나에게 그 백배를 돌려주었다. 고맙다. 삶이여.”- 181면 작가 인터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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