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적 즐거움> / P.G. 해머튼/ 박해순 외/ 베이직북스/ 2008.8.25. 초판, 9.10. 3쇄/ 2008.9.25. 인터파크/ ~11.27 

454면에 달하는 책이다. 밤마다 자기 직전에 조금씩 읽었는데 거의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이번 11월은 유난히 바쁘고 힘든 달이라 사실 책 읽을 조금의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지만 용하게도 버스 기다리면서, 버스 타면서, 졸면서 최대한 읽어보려고 발버둥친 것 같다.

그다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용어 ‘지적 생활자’를 위한 충고의 글이다. 저자는 1834년 영국 태생의 P.G. 해머튼이란 분인데, 미술평론, 소설 등을 통해 예술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이런 식의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은 처음 접하는지라 신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이 쓰인 시기가 19세기이고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글이라 어느 정도는 버려도 될 듯했다. 내용은 처음엔 무척 재미있었고, 새겨들어야 할 좋은 글이 참 많았다. 그런데 중간 정도부터 계속되는 비슷한 글이라 조금 지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참기 어려웠던 것은,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특히 ‘~데’, ‘~할 만한’ 등을 비롯해 내가 책에 체크한 것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 듯하다. 같은 단어가 한 페이지에서 수시로 다르게 표시된 것도 많이 봤다. 교정자 이름이 세 명이나 붙은 책이다. 교정이 이렇게 엉망이면 번역도 의심스럽기 마찬가지다. 좋은 책을 내준 것은 고마우나 기본적인 것도 안 되는 책이라면….(이 출판사의 이름은 ‘베이직’ 북스다.)


<<좋은글귀>>
≫ 사람이 자신을 연마하여 타인의 주목을 얻으려면, 매일 정해진 일상생활로 쫓기는 가운데 시간을 쪼개 노력하는 정도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땀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 프롤로그 -

 

≫ 고통 없는 인생이란 음영 없는 그림 같은 것이다. 질병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 대자연인 여신의 품안에만 안겨 있던 사람은 분명 어딘가 부족한 면이 있다. 마치 육지에서만 생활하는 인간이 깊은 바다의 공포를 비웃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들은 바다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몸소 경험한 적도 없으며 그것을 상상할 두뇌도 갖고 있지 않다. - 48면 운동을 싫어하는 지적 노동자에게 -

≫ 가장 수준 높은 지적 탐구를 하려면 감각기관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 53면

≫ 지금껏 위대한 창조적 지성을 지닌 인물이 금욕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 창조적 지성의 소유자는 모든 종류의 쾌락에 대해 바르고 건강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 56면

≫ 나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저렴한 빵의 그윽하고 깊은 맛을 알게 하고 싶고, 먼 곳에서 표류해 오는 낙엽송 향기를 맡게 하고 싶다. 파도의 비말을 뒤집어썼을 때 명랑한 기분이 들게 하고 싶고, 회색 구름의 미묘한 농담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예민한 눈을 갖기 바란다.

만약 가능하다면 천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청력을 갖기 바란다. 또 군함의 커다란 대포소리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굳건한 신경을 갖기 바란다. 이러한 오감의 능력을 지니고 또 유지하기 쉽지 않겠지만 확고한 극기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이란 오래 사는 것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평생토록 지적 생활을 한 후 몇 년의 수명이 주어진다면, 그 몇 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 57면

≫ 인생이란 쐐기가 얕고, 빈약하며, 하찮게 보일 때 세상을 떠난 이름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 속에서 불쑥 나와 있는 섬처럼 그 사상이 더욱 깊어지는 행복한 노인도 있다.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가. -58면 / 사회초년생에게...

≫ 지적 생활이 주는 기쁨이 큰 것은 지적 노동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지적인 인간을 창조해낸 신은 자신의 창조물에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얻을 수 있는 일을 부과했다. 그 일에는 최대한의 인내와 용기와 자기 수양이 요구된다. 동시에 그 성질상 금전적으로 보상받지 못하고 매우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이 많이 있다. -62면

≫ “처음 새로운 시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꿈속처럼 황홀한 천국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막상 그것을 정화한 말로 옮겨야 할 단계에서 애쓰다 보면 천국은커녕 지옥을 헤맨다.” 64면

≫ 일반적으로 훈련이 성의 없고 무척 귀찮게 여겨진다면 분명 그때는 훈련이 꼭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 평범한 직업에 종사하며 아무 흥미조차 느끼지 못하는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때만큼 훈련의 효과가 확실하게 드러날 때도 없다. - 77면 / 지적인 사람에게 정신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모럴리스트에게...

≫ 지적 생활을 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공평무사한 정신이며, 그 점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공평무사한 정신적인 자질 이외의 중요한 자질을 하나씩 열거하고 싶다. 근면, 인내심, 용기, 꾸준히 훈련에 따르는 마음, 겸허함 등등. - 82면

≫ 예술가가 예술 방면의 탁월한 비평가인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작업 자체가 예술가에게 편파적인 견해를 요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술가란 공평무사한 입장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 86면 / 지적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지 묻는 친구에게…

≫ 모든 요리 기술의 근원을 살펴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요리 재료의 궁합을 파악하는 것과 열을 얼마나 가하고 줄이느냐를 아는 것 두 가지이다. 96면 / 다양하게 많이 배우기를 권하는 친구에게

≫ 지식이라는 각기 독립통과할 수 있는 규칙이 있다. - 105면/ 박학다식한 친구에게

≫ 어떤 함축적인 언어로, 그 저자의 책을 읽었을 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어딘가에 인용된 것을 읽었을 때 무심코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경험이 당신에게 없는가? 그와 똑같은 원리로, 인간은 그림을 그린 화가에게 직접 구입하는 것보다 그림가게에서 구입할 때 더 많은 돈을 지불해버린다. 그림은 한 번 판매상의 손에 넘어가면 관록이 붙고, 언어는 어딘가에 인용되면 매력적으로 변해 본래의 문맥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체가 된다. -176면

≫ 일반적으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인간이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곰곰이 되돌아보며 마음속 깊이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아마 기획하고 추진했던 일들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드는지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자기가 범한 최대의 오류로 생각할 것이다. - 177면

≫ 경험이란 보통 생각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 178면

≫ 모든 일의 진정한 위대함은 한 인간이 그 일에 얼마만큼 에너지를 쏟아붓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 179면

≫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일 중에서 특히 쉽게 환상을 품는 것이 독서이다. 책읽기를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서 언젠가 폭넓게 문학서를 많이 읽어야지 하는 계획을 세우기 쉽다. 부지런히 책을 모아 놓고도 대부분은 시간이 부족하여 읽지 못하고 마는데 그래도 독서에 대한 열정만큼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 181면 / 희망찬 미래를 기획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 독서의 기술은 가장 중요한 핵심을 파악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건너뛰고 있는 데 있다. 오늘날에는 모든 책의 내용이 현대 문화 전체가 반영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책의 저자들이 걸어온 학문의 자취를 일일이 꼼꼼하게 더듬듯이 독서할 필요는 없다. 건너뛰고 읽어도 상관없다. 읽으려고 마음먹은 몇 권의 책 중에 자기에게 중요하지 않아 읽는 순간 완전히 잊어버릴 책도 으레 섞여 있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빼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절대로 빠뜨리지 말 것. 이것이 독서의 기술이다. - 199면 늘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는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