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 The Empty Space / 피터 브룩 Peter Brook/ 김선/ 청하/

 피터 브룩(1935～)의 『빈 공간』은 참 좋은 책이다. 세상에 ‘大家’로 알려진 사람들을 보면 좀 고집스럽거나 엉뚱한, 일반인과 다른 천재적 기질이 있기 마련인데, 피터 브룩의 책을 읽어나갈수록 괜찮은(훌륭한) 사람이란,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고 또 받아들이는, 온화하고 넉넉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터 브룩이 누구인가, 현존하는 연출가 중 단연 첫 손으로 꼽히는 사람 아닌가? 솔직히 피터 브룩의 이름은 극장일을 하면서 처음 듣게 되었는데(처음엔 살아 있는 사람인 줄도 몰랐다), 좀 난해하고(로버트 윌슨의 영향?) 어려운 스타일을 자연스레 연상했다.

어떤 예술감독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고, 읽을수록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피터 브룩은 연극연출가이지만 이미 시인이었고, 좋은 에세이스트이기도 했다. 비유와 상징, 자연스런 그의 글 흐름 등을 볼 때 모든 예술은 어떤 경지에 이르면 모든 것을 넘나들면서 스스로 완벽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연극을 네 가지로 나눈다. 죽은 연극 Deadly Theatre, 성스러운 연극 Holy Theatre, 거친 연극 Rough Theatre, 살아 있는 연극 Immediatr Theatre. 물론 우리가 흔히 보는 대부분의 연극은 죽은 연극들이고, 추구해야 할 연극은 살아 있는 연극이다.

다시 한 번 더 숙독할 날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연극, 우리들의 예술가... 어쩌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배우도, 작품도, 관객도, 스태프도 아닌, 오직 잘난 연출가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 므누쉬킨이 이뤄나가는 연극 세계가 어떤 성스러운 느낌의 종교적 자세라면, 피터 브룩은 진실되고 덕망 있는, 그러면서도 집요한 인내를 보이는 인문학적인 자세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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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이 다른 모든 예술과 다른 점의 하나는 거기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적이고 덧없는 현상에 영구적인 기준과 보편적인 규칙들을 적용하기-이것은 주로 비평의 관행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아주 쉽다. (201)

- 관객이란 무엇인가? 불어로 지켜보는 사람들, 대중, 구경꾼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용어들 가운데서 유난히 두드러지며 여타의 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닌 말이 하나 있다. <아시스탕스 Assistance>(거들기라는 뜻과 관중이라는 뜻을 함께 가진 불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며, 불어로 나는 연극을 본다, 라는 말은 <j’assiste a une piece>가 된다. 거들기, 그 말뜻은 아주 간단명료하며 그것이 열쇠이다. (217)

-매일의 삶에서 <만일>은 일종의 허구가 되며 연극에서 <만일>은 일종의 실험이 된다.

매일의 삶에서 <만일>은 일종의 도피가 되며 연극에서 <만일>은 하나의 진실이 된다.

우리가 이러한 진실을 믿게끔 될 때 연극과 삶은 하나가 된다.

이것은 아주 높은 목표여서 이를 성취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따르리라는 느낌을 준다.

연극을 하는 데는 많은 노동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 노동을 놀이로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연극은 놀이이다. (219)